통합검색  |  이미지 검색  |  동영상 검색  |  쥬크박스  |  메모장  |  포토샵  |  디시인사이드  | 

묻지마 디시인사이드 블로그

인도, 터키, 중동 관련 사진과 내용을 올려주세요.

안녕하세요. 디시인사이드 운영자입니다.
인도,터키,중동 여행과 관련된 사진과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
비방, 욕설, 음란물 등록 시 삭제 및 차단 조치가 되고 민, 형사상의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기타 자세한 사항은 갤러리 상단의 갤러리 이용안내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ps. 영리 목적의 광고성 글은 게시할 수 없습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해당 게시물의 삭제 및 차단 조치는 물론,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음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1월달에 인도 북쪽 지방쪽 15일정도 여행 할 수 있어???

    15일 정도면 북인도 지역 여행하기에 너무 짧어???

 
 

중동여행기~ 이집트 다합, 시내산

2010.07.05..알렉산드리아에서 샤름엘셰이크로, 거기에서 다합으로 이동샤름엘셰이크는 좀 돈많은 양인들이 놀러오는 이미지가 있어서 저렴한 다합으로홍해는 세계 3대 다이빙스폿으로 유명해서 홍해주위로 휴양지가 많이 형성되있는데그중에 다합은 다른곳보다 좀 저렴해서 배낭여행객들이 제일 많이 찾는곳이다처음 다합에 도착하면 여기가 이집트인가 싶을 정도로분위기가 다른게 흡사 동남아의 바닷가 휴양지 같은 느낌이 든다장기여행자들 중에는 다합에서 한 2주일 아무것도 안하고그냥 머물다가 가는 사람들도 있는데물가가 싸고 뭔가 푹 쉬는 분위기가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나는 이곳이 별로 맘에들지 않았기때문에 그다지 공감이 가진 않았다 너무 관광지분위기만 나고 조금 위화감이 들어서 정이 가지 않는다고 할까. 얼른 떠나기로 마음먹었다다합에 왔으면 다이빙을 꼭 하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나의 경우는 귀가 안좋아서 깊히 들어가면 귀가 아플려고 해서스노쿨링을 대신 했다음 결론만 말해서 홍해에 가서 다이빙을 못할거라면 적어도 스노쿨링은 해야 할것 같다겉보기에는 마냥 퍼런 바다가 바로 수면에 머리를 넣자마자산호초들이 잔뜩 피어서 바다의 숲이라고 할만했다해변에서 조금만 들어가도 산호초들과 열대어들을 잔뜩 볼수 있다근데 수영을 잘 못해서 잠깐 물안에서 발버둥좀 쳤는데 외국사람이 와서 혼냈다믱..알고보니 산호초를 깨거나 하지 않게 조심하라는 뜻이였다산호초가 다시 자라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린댄다. 재미로 부러트리거나 하지 말자 (나처럼.. 몰랐음 ㅇㅇ진짜)다합에는 외국인 대상의 레스토랑이 많은데입구에 걸어놓은 가격표를 보면 가격이 이집트라고 생각하면 꽤 쌘편이다근데 가격흥정이 가능하다;; 잘하면 반가격에 먹을수 있기도하다고.. 레스토랑인데?;난 그걸 몰라서 가격때문에 계속 중국요리집에서 볶음밥만 먹다가 떠나기전에야 알았다..2010.07.06..시나이 반도의 남쪽부근에는구약성서의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시나이 산이 있는데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시내산이라고 하기도 함ㅇㅇ)양인들이 성지순례 비슷하게 많이 찾는 곳이다다합이나 샤름엘셰이크에서 투어로 가는게 직접 찾아가는것보다 훨씬편하고 가격도 괜찮아서 투어로 찾아가기로 했다투어는 새벽팀과 낮팀이 있는데 낮에는 사람이 잘 안모여서 출발하기 힘들다밤 11시쯤에 산으로 출발해서 1시쯤부터 산을 오르는데가로등 이런게 하나도 없어서 손전등을 가저가면 매우 유용하다앞이 하나도 안보이는데다가 돌길이라서 잘못하면 발목을 삐끗하거나 할수도 있다한 2시간 등산을 하면서 하늘을 보니 별이 가득해서 묘한 신비감이 들었다정상에 닿으면 새벽3시쯤 되는데 교회(가이드 아저씨는 모스크라고 했음ㅇㅇ;)가 있고해뜰때까지 한 2시간쯤 기다려야 되는데, 한여름인데도 좀 추웠다그걸 노리고 정상에서 담요를 빌려주는데 무려 20파운드ㅋ앵간하면 옷 두껍게 입고 가든가 웃옷을 챙기든가 하는게 좋을것 같다나는 반팔반바지로 갔다가 졸리고 얼어죽을것같애서 담요 사서 몸에 돌돌말아다가 그대로 좀 잣다ㅋ먹을것도 많이 안싸와서 무슨 엄청 달기만한 롤케익 우걱우걱먹고 먼지투성이 더러운 담요에 돌돌말려서아마 양인들이 거진줄알았을꺼야..자다가 주위가 소란소란해서 일어나보니까사람들이 엄청 많기때문에 사진찍기 좋은 자리를 미리 잡아두지 않아서 낭패를 봤다5시쯤 되니까 지평선에부터 붉은 기운이 어둠을 걷어내면서 올라왔다정상에서 바라보는 시나이산의 전경은 정말 멋지다바위산들이 굽이굽이 펼쳐지고 이곳이 구약성서의가장 하이라이트인 장면이 펼쳐진 장소라고 생각하니 준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아 난 종교 믿는사람은 아냐ㅇㅇ 그래도 멋진건 멋진거지)이슬람 사람들에게도 시나이산은 신성한 곳이다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셋다 구약성서를 신앙의 기초로 삼기때문이다내려오면서 밤에 올라올때는 안보였던 산의 모습이 보였는데나무가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돌산의 모습이였다내려오다가 발 3번연속으로 꺾였었는데 그후로 여행 내내 한번씩 아팠다올라갈때 내려갈때 "카멜? 카멜?" 하는 호객을 계속 듣게 된다그러거나 말거나 낙타는 느긋하다..시나이산 산기슭에는 세인트카트리나 수도원이 있는데동로마제국 시절에 유스티나아누스 황제의 엄마(맞나..?;;)인 헬레나가 지었다고 한다이 헬레나라는 사람은 독실한 신자라서 여기저기 교회를 많이 지었다지나가는 한국관광팀이 하는 얘기를 좀 줏어들었는데저 건물이 수도원에서 제일 오래된 부분이라고 했다투어를 다녀와서 숙소에서 이집트 맥주를 한번 마셔봤다다합에는 리퀴르숍이 많아서 술 사기가 다른동네보다 쉽다이집트도 이슬람 국가라서 술 파는곳이 많지가 않다근데 이집트 사람중에서도 알게모르게 술 마시는사람이 꽤 있다고 한다이제 이집트를 마무리하고 다음날 요르단으로~-------이번엔 쫌 짧다ㅋ 이집트까지 딱 끊을려다보니까ㅇㅇ가운데로 몰아서 쓸라그랫는데 안된다 대충써야지학교다니면서 쓸라니까 진도가 안나가네

[3]내 생애 가장 젊은 날 - 세상에서 가장 높은 마을 레

 행운은 신도 만들어 주지 않아.
 




 탕그라(탱화) 빼곡히 걸린 집에서 만난 라마는 흡사 비버를 닮은 귀여운 외모와 자그마한  티벳인이다. 어깨에 다일랑 말랑한 단발머리를 머리띠로 훌쩍 넘기고 그리 깔끔치 못한 옷을 대충 걸친 그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껄렁해’ 보였다.
그런 그가 처음 입을 열었을 때 놀라울 정도로 가냘픈 목소리는 순식간에 그에 대한 경계심을 풀어주었다. 
라마는 아주 여성스러운 목소리로그보다 더  다정할 수 없을 정도로  겸손하게 말했던 것이다.   그 가게는 창스파가 끝나는 지점에서 샨티스투와로 갈리는 길 반대편에 있었다.
어느 곳에나 아낌없이 내리쬐는 한 낮의 햇살 속에서 그 집만은 예외였다.
하루 종일 나무 그늘 속에 움푹 파 묻혀 고요히 잠들어 있었지만,
입구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빨강, 파랑 등의  화려한 원색의 탕그라는
주변에 가려 이방인의 눈에 쉽게 잊혀질 그 곳에 경쾌한 악센트를 주고 있었다.  
라마는 탕그라를 그렸던 자신의 아버지로 부터 어렸을 때부터 그리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웠다고 했다. 그의 형도 다른 길 목에서 탕그라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술가라기보다는
자신의 업을 매우 즐기는 한 명의 장사치였다. 사실 그런 장사꾼들은 인도의 유명 관광지라면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껏 그런 사람들과 상대하고 싶지 않았던 나조차 라마에게서 편안함을 느꼈던 것은
오고가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대해 줄 줄 아는 가볍고 명랑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마? 달라이 라마의 그 라마와 같은 이름이야?” “응, 내 이름은 티베트 어로 ‘영혼’을 의미해.” “와- 멋진 이름이구나. 나도 인도 이름 있어 ‘실삐’라고 ….” “ ‘실삐’? 무슨 뜻이야?” “ 뱅골리어로 ‘예술가’래 하하.”
 내가 그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것은 탕그라를 배워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성가시게 생각할 것이라는 나의 걱정과는 달리 그는 전혀 거리낌이 오후에 언제나 이곳에 있으니 배우러 오라고 했다.
물론 '공짜'로 말이다.  
그 사이 라마는 나에게 꿀이 들어간 민트 티를 대접했다. 나는 레에 온 이후로 민트티를 좋아하게 되었다.
어쩌면 화장품을 먹는 기분이 들 법도 하지만 (향이 진하기 때문에) 나는 특유의 그 깔끔한 맛이 좋았다.
“이층에 카페가 있어. 배고플 때면 언제든 와서 밥을 먹어도 돼.” 나는 그런 말을 바라고 레의 높은 음식 값에 대해 그에게 불평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제의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그렇게 불쌍해 보였던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해변 휴향지인 고아에서도 장사를 하는데 그 곳에서도 서양인 여행자 여럿에게 그냥 밥을 먹으라고 한단다. 나는 그 말이 허황된 거짓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너는 정말 일을 즐기면서 하는 구나.” “응, 돈이 많은 사람에게는 많은 돈을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굳이 돈을 받지 않는 경우도 많아.”
라마의 레스토랑은 몇몇의 점원들만이 느긋하게 중앙의 당구대에서 게임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라마는 결코 손님이 없는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진 않은 듯 했다.
오히려 천하태평인 그의 태도에 괜한 걱정이 든 것은 이 카페에 절대 올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나였다.
     “그렇게 장사해도 되는 거야?”
“지금껏 그렇게 해 왔는걸 ― 그러나 난 망하지 않았잖아?!”
그의 정신세계는 서구사회에서 현대판 오리엔탈리즘의 부활을 낳은 티벳이라는 나라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한 계기가 되었다. 아니 이 사람이 진정한 불교신자인든 아니든 간에 적어도 그런 쾌할한 기분을 가진 그의 기운을 나에게 전이 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난  아슈에 대한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곧 만날 수 있을 거야. 레는 좁은 마을이니까.” 난 그의 말이 현실과 동떨어진 위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뚜렷한 희망을 안겨주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 30여분 가량 그와 마주 하며 느꼈던 라마다운 경쾌함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무언가 아쉬워진 내 가슴 속에 느껴지지 않는 확신을 라마에게서 바랬던 건지도 모르겠다.“그렇지만, 난 운이 좋지 못한 걸.” 솔직하지 못한 위로를 기대하던 나에게 그는 더 이상 담담할 수 없는 어조로 나에게 말했다.           “행운은 신도 만들어 주지 않아. 네가 불운하다면 그 원인도 너한테 있는 거야.”    그 솔직한 말은 나를 의기 소침하게 했다.“윤회를 말하는 거니? 다 나의 업이라는 거야?”  “응- 네가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이니… 그저 그런 현상 앞에 평온한 마음을 가지면 되는 거야.” 그제야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라마의 말대로 나는 지금 아슈를 만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기다릴 수밖에…   마침 시장에 간다는 그를 따라 나선 것은 그 때문이었다. 우리는 캐시미어 장사를 한다는 그의 삼촌의 가게에 갔다.
그곳에서 나는 그가 왜 복잡한 장사 속에서도 평온해 보이고, 망할 것 같으면서도 망하지 않았던 현실적인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그의 삼촌 또한 청산유수와 같은 언변을 가진 장사꾼 이었다. 우리는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고 여러 번 크게 웃음이 터졌다.
그는 나의 예민한 질문에도 스스럼없이 모두 대답해 주었다.  
 “캐시미어의 실제 가격이 얼마에요?” “솔직한 대답을 원하시겠지요? 인도인이나 다른 아시아관광객들에게 보통 10배의 가격을 부르고 서양인일 경우 20배를 부르죠! 하하하.” “앞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말고 정말 열심히 깎아야 하겠군요.” “당신에게는 특별히 싸게 들입니다.”
그는 어느새 장사꾼의 표정이 되어 나에게 말했다.
 나는 정말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남아 있던 분홍색 라다키 짜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 마셨던 라다키 티보다 짠 맛을 덜느끼는 나의 혀와  함께 레를 조금 더 알게 된 것같은 흡족한 기분으로 시장을 벗어났다.  

 

연말에 아루나찰라 갈건데.

원네스 트레이너 코스  오르빌에서 끝내고, 아루나찰라가고 한달 정도 여행할 예정인데

얼마정도 생각해야되나요?

[2]내 생애 가장 젊은 날- 세상에서 가장 높은 마을 레.

leh, leh, leh !






고산병으로 머리가 띵하다. 속은 메스껍다. 간만의 휴식을 셈치고 거리가 내다보이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많은 시간을 잠을 기다리며 누워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일은 좀 더 솔직해 질 수 있기를…….
그리고 아슈가 정말 오기를 바란다.
2009.07.03



 눈을 떴을 땐 지난밤의 공포는 감쪽같이 없어져 버린 자리를 온화한 빛이 가득 채우고 있다. 창문을 열고, 레의 아침공기를 마신다. 행복이 가득한 싱그러움 ―  우리는 서늘한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곧바로 방을 나섰다. 어쩔 수 없이 ‘끌려’온 이곳에 더 머물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침 햇살은 자작나무에, 노오란 골목길에, 오래된 돌담에 부딪쳐 꿈처럼 아스라한 신기루다. 세상에 이토록 완벽한 날씨가 또 있을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불교에서는 극락을 일컬어 춥지도 덥지도 않고 알맞게 쾌적하고 어둠이 없는 밝은 세상이라고 한단다.
세상에 그런 곳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이 높디높은 히말라야 산중에서 불교가 융성하게 꽃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좁은 골목길을 햇빛에 취해 걷고 있던 언니와 나를 이른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이 신기하게 바란본다. 발그레한 볼에 조금 까무잡잡한 피부는 꼭 우리의 시골 아이들을 보는 것 같다.
초록 색깔의 모자를 쓰고 있으니 키가 큰 자작나무가 땅 가까이 솟아 난 것 같다.  골목길 끝에는 연못이 하나 있었다. 이 동그란 생태계 안에는 수많은 생명이 부지런히 자라나고 있다.
그곳에서 내려와 사거리 큰길에서 서쪽으로 오르면 여행자 숙소가 모여 있는 ‘창스파’가 나온다. 샨티스투파 가는 방향이다.
 창스파 들어서자 말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가 방을 잡았다.
그저 어디로든 이동하기 편한 곳에 있으면서 적당한 가격과 크기를 갖추고 무엇보다 채광이 좋은 방이라면 더욱 더 바랄 나위 없다. 가격은 200Rs (우리나라돈 5000원). 언니와 내가 하루에 100루피면 아늑한 방은 문제없었다. 이제 우리 앞에 놓인 가슴 벅찬 행복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마음이 한껏 여유로워진 우리는 허기를 때울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기로 했다. 어제부터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다. 우리는 길가에 있는 한산한 카페로 들어간다.
벽면을 따라 키 높은 자작나무가 둘러서 있는 야외 식당이다.
사실 자작나무만 없다면, 서양식 구색을 갖추어 놓으려고 애쓴 테이블이 조악하기 그지없는 관광지 식당이다.

그러나 레의 햇살 속에 모든 것은 황홀했다.  
 높은 자작나무에 깃든 바람이 언니의 얼굴에 가라앉아 은은하다. 어제처음 만나 얼떨결에 같은 방을 쓰게 된 혜영언니는 전라도 광주 출신이다.  그녀는 다소 느긋한 말투를 지녔다. 나는 오래지 않아 내 마음 구석구석 담긴 이야기를 그녀에게 술술 잘도 들려주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언니가 좋은 사람이라는 또렷한 증거다.   “그으 – 래에 - ?” 하며 엷은 웃음을 뛴 언니만의 시김새는 주로 듣기보다 말하는 쪽인 나의 드센 기운을 포근히 감싸준다.  ‘내가 언제부터 듣기보다 말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것은 서울생활이 답답하고 외로워지기 시작했을 때부터라는 것을 나는 너무 잘 안다. 언제부터고 나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살아야 했었는데 그것은 자연스레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내게 했다. 나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 없이 조잘대던 친구들을 상대할 시간은 견딜 수 없이 마음 불편한 일이 되고야 말았다.
그들의 웃음과 이야기가 떠나버린 고독한 시간을 나는 공부와 일로 채워 놓고 살아 왔다. 그러나 그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으니까… 시간에 쫏길수록 마음은 절실해져 갔다. 그러다 가끔 이렇게 예기를 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목마른 사막을 헤매다 오아시스를 만난 개 마냥 숨을 헐떡이며 정신없는 이야기를 쏟아내곤 하는 것이다.

그렇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수면 위에 떠오르는 초라한 나의 모습을 바라본다.  “개인주의” 라는 말로 군더더기 없이 재단된 가면 뒤에 꼭꼭 숨겨 왔던 초라한 외로움이 ―
그 모습을 보는 것은 끔찍하다.
그러나 혜영 언니에게는 그런 벌거벗은 내 모습을 따뜻하게 감싸주고도 남는 풍요로운 다정함이 있다. 그녀는 인도여행이 3번째라고 했다. 꼭 내 나이 즈음에 처음 인도에 왔고 그때 이후 시간과 돈이 허락하면 언제나 인도로 돌아온 셈이다.
여행 중에 만난 한국 사람들 중에는 인도여행이 처음이 아닌 사람이 많았다.
정작 여행을 할 동안에는 무질서, 비 위생 그리고 어딜 가나 끝이 없는 사람들에 치여 이 땅을 다시는 밟나 봐라 하는 심정으로
고국에 돌아갔다가도 그 다사다난한 추억은 길고 오랫동안 자신을 놓아 주지 않는 다고 한다. 그래서 몇 년이 흐른 후 다시 인도에 오면 공항을 나서자 말자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달려드는 릭샤왈라들 속에서
‘내가 왜 또 왔지? ‘ 하는 의문이 드는 곳이 인도라며 입을 모았다.

그렇게 인도에 일단 발을 담은 여행자들은 저마다 조금의 열병을 안고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나는 거리의 소리가 두둥실 떠오르는 2층 방에 누워 있다. 활기찬 소리를 듣고 있으면 가만히 누워 있어도 거리를 걷고 있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고산병 때문인지 기력이 하나도 없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나도 하지 못했지만 구름 속에 떠있는 듯 한없이 편안하기만 하다.  그리고 아슈를 생각했다.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창가로 다가간다. 시원한 바람이 창틀에 걸터앉은 내 다리에 잠깐 스쳐 지나간다.
게스트 하우스의 까만 대문 앞에는 이곳에서 소일하는 소년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서양인 한 무리가 빠르게 지나간다. 이제 막 트레킹을 마친 듯 여전히 흐트러짐 없는 걸음걸이는
그들이 아직도 등산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 까 하는 착각을 들게 한다.
어깨에 기타를 울러 맨 머리긴 히피들도 있다. 그들은 그보다 더 느릴 수 없는 걸음으로 지나간다.
육감적 몸매의 이스라엘 미녀들도 많다. 소년의 머리는 그녀들을 따라 천천히 움직인다.
 거리 상점에서 샀을 색색 깔의 인도 옷을 꼭꼭 챙겨 입은 한국인 여행자들도 꽤 많다.
건너편 레스토랑의 옥상에는 한 낮의 풍요로운 태양아래 저마다의 언어로 작은 대화들 나타났다 사라진다.    
 나는 가방에서 스케치북과 볼펜 한 자루를 꺼내든다. 단돈 5Rs(140원)를 주고 산 볼펜은 그림 그리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나는 언제나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쓰는 걸 좋아하니까 ―

종이 쪼가리에 대충 그리면 잘 그려지던 것도 비싼 종이사서 본격적으로 그려 볼 때면 잘 그려지지 않는 소심함을 타고난 것이다.
부담스러운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느, 어려서 부터 뭐든 멍석을 깔아주면 더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욕심 부리는 것 보다 그저 무난하고, 쉽고 편안한 것들을 취하는 삶의 방식이 나에게 맞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노력하지 않아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연한 만남, 여행, 그리고 자연....  그것들을 마음 편하게 누리기에도 인생은 짧다.       

중동여행기~ 이집트 시와-알렉산드리아

2010.07.03..이집트는 땅이 넓어서 야간버스가 많이 돌아다니는데거의 대부분 버스에 티비가 달려있어서 영화를 틀어주거나 티비없음 없으면 노래라도 틀어 놓는다근데 이게 야간버스 탈때도 예외없이 영화를 틀어줘서빛+정신없는 아랍사운드에 잠이 잘 안올정도이다; 게다가 에어콘도 오락가락하면 이제덥고 시끄럽고 "티비 꺼 임마!!!!!" 라고 해주고싶은 기분이 되버린다잠이나 자지 무슨 야간버스에서 영화를 틀어주는지 원ㅋ보통 시와를 갈때 알렉산드리아를 찍고 가는 경우가 많은데최근에 카이로에서 시와 직행버스가 생겨서 편하게 갈수잇게 되었다버스가 6시45분인가 에 출발해서 새벽2시쯤에 마르사마투사 라는 곳에 도착하는데사람들이 막 내리라길래 시와인줄알고 내렸다가 낌새가 이상해서여기저기 물어보니 엉뚱한곳이였음ㅋ;; 엄한데서 내릴뻔 짐까지 내렸엇는데어쨌든 어찌어찌 시와 도착시와는 이집트 서부의 끝자락, 리비아 국경에 인접한 도시이다 또 사하라 사막의 끝자락에 위치해있기도 하다그러다보니 외부와 교류가 어려워서 아직도 당나귀가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시와까지 포장도로가 생긴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새벽6시가 되어 도착해보니 다른 이집트의 도시와는 다른 분위기.이 동네에는 아랍인들도 있지만 주로 베두윈족이 살고 있다그래서인지 좀 조용한 분위기.. 아랍사람들은 특유의 에헤에야헤에햐야 하는 노래를 틀어 놓아서좀 시끄러운데, 이 동네 사람들은 그런걸 별로 안좋아한다나 뭐라나저 구멍 뽕뽕뚤린 오브제가 뭔가 싶어서 동네아저씨한테 물어봤더니비둘기를 저기다가 길러다가 잡아먹는댄다기념품도 팔고 샌드보드도 빌려주는 가게한창 더운 비수기라 그런지 관광객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사막투어를 하려고 해도 참가자가 없어서 출발하질 않는댄다그래서 오늘은 일단 시와 마을을 구석구석 돌아보기로 했다시와의 랜드마크라고 할수 있는 샤리. 옜날 사람들이 살던 도시의 흔적이라고 한다뭔가 집이였던거 같은 형체들이 옹기종기 뭉쳐서 독특한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샤리 꼭대기에서 보이는 돌산은 죽음의 산이라고 불리는 곳인데고대 이집트인들의 무덤이 동굴형태로 있어서 죽음의 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그런데 2차 대전중에 이탈리아군이 그 동굴을 방공호로 써서 상당수 파괴되었다고.2차대전때 이집트 서부 사막은 연합군과 추축군간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여기서 연합군이 승리해서 아프리카 전선을 방어할수 있엇다고 한다호텔에서 만난 도마뱀싱크대에서 못빠져나오길래 꺼내줄려그랫더니 꼬리를 탁 끊고 도망갔다도마뱀 꼬리 끊는거 처음봤는데 꼬리가 낙지처럼 팔딱거림ㅋ다음은 자전거를 타고 마을 근처의 볼거리를 찾아서~시와에는 큰 오아시스만 있는게 아니라 자그마한 간헐천 같은곳도 많이 있다그런 곳은 작은 호수가 되서 마을사람들이 수영도하고 하는데그중에 좀 괜찮은 시설이 되어있는게 바로 이 클레오파트라 스프링.동네애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는데 물에 뭐가 떠다녀서 조금 더럽다고 느껴지기도 했다근데 물 자체는 깨끗한듯나의 발이 되어준 자전거. 하루 종일 대여해서 10파운드그런데 후에 이 자전거에 몹쓸짓을 하고 마는데..클레오파트라 스프링클레오파트라 스프링을 뒤로하고 오아시스가 만든 나무길을 계속 가다가나무열매따는 아저씨를 만났다.아저씨가 손짓으로 나를 멈추더니 열매를 몇개 쥐어줬다뭐라뭐라 했는데 뭔소린진 몰라도 아무튼 슈크란ㅇㅇ(땡큐) 해주고 왔다나중에 보니 그 열매는 무화과였다..길을 따라 계속 가면 아문신전이 나타난다. 신전이라곤 해도 벽 한면빼고 다 무너진 폐허지만이곳은 이집트가 페르시아한테 점령 당했을때 페르시아인 파라오(넥타레보2세..일꺼야 아마ㅇㅇ)가 지었다고 한다아문신전에서 더 가면 신탁의 신전이 나타나는데이곳에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서 유명한 곳이다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집트를 정벌하고 시와사막까지 와서이 신전에서 잠들었는데, 밤에 꿈에 아문신이 나타나서"네가 내 아들이다" (내가 니 애비다도 아니고..)하고 갔다고 한다.이집트에서는 파라오가 태양신의 자손으로 신격화되고 있었기떄문에알렉산드로스대왕이 내가 세계의 왕이 될 꿈이구나 해서 동방으로 원정을 떠났다는 훈훈한 이야기.어쨌든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멀리 인도 근처까지 갔다가 병걸려서 급사하고대왕의 제국은 3분할되서 이집트에는 프톨레마이우스 왕조가 시작 된다.아무튼 그래서 이곳이 신탁의 신전..여기서 존나 비극적인 일 발생자전거를 타고 신탁의 신전으로 열심히 가고 있는데갑자기 급 방구가 마려워졌다한참 자전거로 속도감을 즐기고 있던터라, 갑자기 방구차가 생각나서 방구부스터 발싸 하면서 힘 빡 줫는데부왘...?!?!?!?하면서 똥국물이 찍 나와서 존나 끔찍한 일이..그러니까, 혹시라도 시와에 갈 사람이 있으면 저 자전거는 타지마..덕분에 신탁의 신전 보면서도 감흥이고 뭐고 없었다..숙소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고..;;;다시 자전거를 타고 멀리 오아시스를 향해서 출발자전거를 타고 아까왔던 길 반대쪽으로 한-참 가면 오아시스가 나타난다오아시스인데도 바다같은 짠 내음이 느껴졌다이렇게 큰 오아시스를 끼고 있으니 시와같은 도시가 생길수 있었을게다갑작스럽지만 시와에 있는 유세프호텔,시와에서 제일 싸고 한국인들이 많이 다녀서 일단 그쪽으로 갔는데침대에 누워있는데 옆으로 누우니까 검고 세모난 대가리의 생명체가 등장.자세히 보니 소문으로만 듣던 배드벅.놀라서 약뿌려서 싹쓸고 나오니까 계단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바퀴벌레.로비로 나오니까 왠 눅눅한 쌍내가..굳이 비교하자면 침냄새같은게..... 싸다는것 빼고는 참 드러운곳이였다.듣자하니 종업원이 좀 친절해서 좋다는 말도 있던데 난 잘 모르겟다..2010.07.04..다음날 호텔에서 만난 h형님과 같이 사막투어를 찾아봤으나제대로 팀이 맞는곳이 한군데도 없어서 하는수없이 웃돈을 주고 두명이서 투어를 했다4wd타고 출발~마을에서 조금 벗어낫다 싶었는데 어느새 시계가 바뀌고 주위가 온통 모래로사막을 육지의 바다라고들 하는데, 와보니 그 이유를 알겠더라사방에 모래밖에 없는 살풍경에 가슴이 살짝 두근거렷다배두윈 운전수아저씨가 4wd를 타고 샌드듄을 오르락 내리락하면서 정신을 뺴놓는다재밌다고 해주면 더 신나서 묘기운전을 선보인다샌드듄은 보기보다 엄청 높고 경사도 장난아니라서 이런데도 올라갈수 있을까 싶은데, 못가는곳이 없다가다보니까 나타난곳은 사막의 오아시스오아시스에 동네사람들이 놀러와서 낚시를 즐기고 있다사막에는 존갈이나 그런거만 사는줄 알았는데 오아시스에 물고기가 살고있을줄이야.다음으로 운전수 아저씨가 샌드보드 탈만한곳으로 안내해준다고 해서 간곳은거대한 규모의 샌드듄사진으로 보기엔 그냥 언덕같애도 막상 서보면 식겁할정도의 경사였다샌드보드 들고 출발우와아아앙!?!?!?들고 올라오는게 힘들어서 2번타고 접었음ㅋ바람이 만드는 물결..이곳은 온천 오아시스. 일명 핫스프링이라고 부르는데따듯한 온천수가 나오는 오아시스이다.근데 물에 기름같은것도 좀 떠잇고 이끼도 장난아니게 끼어있어서 솔직히 보기에는 좀 드럽다그래도 물이 좋다길래 나는 머리까지 다담궜는데 같이간 형님은 드럽다고 안들어가셨다들어갓다 나오니까 땀이 싹 씻겨서 무척상쾌했다먼옜날 언젠가 사막에서 운명을 달리했을 동물의 흔적.단단한 석회암때문에 흔적이 남아있다운전수아저씨한테 묘기좀 보여달랬더니 신나서 운전중해가 지면 신발을 벗고 직접 모래에 발을 대보자모래가 깨끗하고 시원해서 기분좋음배두윈식 차끓이기!사막에서 쉽게 볼수있는데 마른 나뭇가지를 줏어다가 불을 피운다음차를 끓여서 소주잔같은 잔에 따라준다 설탕은 듬뿍 넣어주는것이 포인트일명 베두윈 위스키라고도 하는데 석양을 보면서 마시는 달짝지근한 차는 특별한 맛이 있었다해가지고사막에 누워서 별을 보자해가 점점 지면서 북극성을 시작으로 수많은 별들과 은하수가 모습을 드러낸다사진에는 쪼금밖에 안나왔지만 평범한 디에쌀로 별을 제대로 찍는건 무리니까.해가 지고 달이 뜨기 전까지가 별을 보기 가장 좋은 시점이다달이 뜨면 달빛때문에 별들이 많이 사라진다사막에서 누워서 잘려다가형님이 야간버스타고 바로 뜨자고 하셔서 같이 따라서 간곳은예정에도 없던 마르사마투사.. 여긴 어딜까?;..2010.07.04..마르사마투사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많이 찾지 않는곳인데현지인들이 해수욕하러 많이 찾는다. 우리나라 해운대같은 곳이라고 할수 있겟다마르사마투사의 볼거리는 지중해 뿐.같은 지중해라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상당히 차이가 있는데이곳은 물이 맑고 아름답기로 소문난곳이다새벽 2시쯤에 마르사마투사에 도착하니 바닷바람때문에 몸이 꿉꿉했다한밤중에 게스트하우스 찾을라면 끝도없을것같아서 좀 좋은 호텔에 쇼부쳐서 100파운드에 잤다그러고나서 다음날마르사마투사에서 바다만 보고 얼른 각자 갈길을 가고자택시를 대절해서 중요한곳만 오전중에 빠르게 보기로 결정..마르사마투사 시내에서 차를 타고 좀 나가면 나오는 아기바 해변딱 언덕사이로 바닷물이 들어와서 수영하고 놀면 참 좋을것같았는데..시간이 없어서 구경만마르사마투사 근처에는 이집트에는 안어울리는 호화로운 주택들이 많은데택시아저씨한테 물어봤더니 정부 고위관리들이 지어놓은 별장이라고 한다저개발국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집트도 빈부격차가 꽤나 심한 나라이다우리나라사람한테도 비싼 패스트푸드점이 거리를 채우고 있는데(전에도 썻지만 맥도날드가 우리나라보다 비싸다)그곳에서 식사하고 즐기는게 이 동네 보통사람들이 할수 있을것같지 않았다결국 마르사마투사같은곳에 놀러올수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잘사는 사람들인것이다. 딱보기에도 그렇고마르사마투사 시내쪽으로 좀 들어오면클레오파트라 해변이 있는데, 제일 사람들이 많이 찾는곳이다바닥이 그냥 비치는 바닷물은 처음봐서담수같은게 마셔도 괜찮을것 같았지만 물론 짰다..12시쯤되서 사막을 같이갔던 형님과는 이별하고다음으로 간 곳은 알렉산드리아알렉산드리아에서 그날 저녁에 바로 다합으로 가려다 보니까짐을 맡길곳이 없어서 들고다니느라고 엄청나게 고생했다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니까한때 세계 지혜의 집결지였던 고도에 발을 얹었다는것만으로도 뭔가 좋았다알렉산드리아는 초승달 모양의 항구도시인데(곶이라고하나 만이라고 하나.. 아무튼 그거)이집트 제2의 도시이고, 이집트 내에서는 '그나마' 좀 조경에 신경을 쓴듯한 흔적이 보이는 곳이다바다 넘어 보이는 카이트베이 성채옜날에는 저곳에 고대7대불가사의중 하나인 파로스 등대가 서있었다고 한다짐이 너무 무거워서 저기까진 못갔다...햇볕을 받아 반짝거리는 수면.. 사진으로 열기까지 전해줄수있다면 좋을텐데ㅋ바닷가라서 조금 덜 덥긴해도 40도근처이집트 젊은이들도 연애 합니다ㅇㅇ 나도 안하고사는데 분하다엉엉이집트는 이슬람국가중에서도 꽤 개방된 편낚시하는 아저씨. 근데 바다가 사진은 없는데 한쪽구석에 쓰래기가 무진장 떠다닙니다ㅋ조금 더러웠음.. 같은바단데 마르사마투사랑 이렇게 틀리다니..시내 중심부에서 내려서 조금만 해안을 따라 걸어가면 나오는것이알렉산드리아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다옜날에 있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알수없는 이유로 소실되었다고 한다(여러가지 설이 있으나 아직 진위는 알수없음)그러다가 최근에 유네스코와 여러 나라에서 기금을 대줘서 초현대식 건물로 재탄생할수 있었다비스듬히 자른 원통형모양의 건물인데앞으로는 물을 배치해서 색감이나 구도나 조화를 이루게 해놨다도서관 이랑 연못;; 사이에 벽을 보면 세계각국의 말을 적어놨는데 잘보면 한글도 있다내부는 이런느낌이집트에서는 생각할수없는 초호화시설층마다 컴퓨터가 쫙깔려있고 공부할수있는 책상도 많고 책장도 엄청나다이집트 대학생애들이 공부를 하고 잇는 모습도 보였지만 아직 이용률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아직 장서도 좀 부족하다고.. 이건 생긴지 얼마 안돼서 그런듯책은 60은 영어이고 한 30퍼정도 아랍어, 나머지는 제3세계언어...아랍어로 번역되는 책이 적은모양이다전체적으로 동북아시아에 대한 책이 많지가 않았는데한국에 대한 책은 진-짜 조금밖에 없었다.그중에서 한글로 된 책은 딱 1권봤음ㅋ좀더 유명해지지 않으면 안돼겠다, 대한민국..알렉산드리아에서 동쪽으로 시나이 반도의 샤름엘셰이크로 떠나는 버스를 예약했다샤름엘셰이크까지는 한 9시간 걸린다. 원래 다합으로 가야 되는데알렉산드리아에는 다합 직행버스가 없어서 샤름엘셰이크에 들렸다가 다합가는 버스로 갈아 타는게 좋다또 고통스러운 야간버스(소음+빛+더위+좁아 등등) 를 타야하므로 배를 든든하게 해두었다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남쪽으로 좀 내려가서 골목으로 어찌어찌 들어가면나오는 해물요리 식당! 론니플래닛에 써있는거 보고 온건데 현지인들에 엄청나게 많았다뭔가 골목이 통째로 식당인 느낌인데, 가서 보면뷔폐같기도하고.. 이것저것 요리들이 있어서 골라서 시키는 방식인것같았다내가 어리버리 타고 있을려니까 왠 녀석이 와서자기가 도와준다고 "이거먹을래? 저거먹을래?" 하면서 집어주고 자리도 잡아주면서 하는말이"넌 나한테 팁을 줘야해~ 내가 도와줬으니까~""팁 주면 음료수는 서비스로 줄게"벌써 얜 외국인만 오면 전담으로 맡아서 처리하는 애 같았다그래도 애가 좀 싹싹하게 굴고 나름 팁 받을만큼 움직이길래생선튀김 한개 더 얹어 달라고 우긴다음에 그냥 팁 줬다그래서 먹은게 이거....뭐 특별히 설명할만한 건 없고 그냥 조개랑 새우튀김 생선튀김 찐밥 등등..솔직히 조금 비위생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집트 기준으로는 보통의 청결도였지만뭘 하도 많이 줘서 배불러서 다 못먹었다....알렉산드리아 시내에서 버스터미널까지 가려면 택시를 타든가 버스를 타든가 해야한다택시기사놈들의 사악함을 잘 알기때문에 구태여 버스를 타기로 결정하고지나가는 세르비스를 잡아서 "버스스테이션??"을 외치길 약 40분이리끌려다니고 저리끌려다니고 하던 끝에 힘들게 터미널 도착 흑흑앵간하면 돈 아끼지말고 택시타는게 속 편하다. 외국인이 세르비스를 타는건어디 가는게 어디로 지나가는지 잘 알지않고서야 좀 고생세르비스택시(원래 서비스택신데 아랍 애들은 service의 ser부분을 굴려서 발음함)는 우리나라에는 없는데아프리카나 중동에는 어딜가나 있는 대중교통수단이다한마디로 봉고차 버스라고 보면 되겠다.그리 해서 9시쯤 야간버스를 타고샤름엘셰이크로 출발~버스는 역시 힘들었다. 하필이면 티비 바로 아래자리라서 더 힘들었다ㅋ개강해서 글쓰기힘들다.. 학교가기싫다엉엉.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응을 보내주니까 계속 올린다근데 슬슬 누가좀 알려줄래? 이거 글 가운데로 몰아서 정렬하는게 어떻게하니??블로그에 썼을땐 제대로 몰려있엇거든??

겨울에 레가기 VS 겨울에 훈자가기

참고로 레와 훈자를 못가봐서 한이 쌓인 사람임

인도및 네팔 여행경비 질문좀 드립니다!

올 겨울방학에 50여일정도 북인도및 네팔 배낭여행을 생각중인데요

세세한 일정은 아직 세운건 없구요

네팔에서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생각중입니다 일주일정도

트래킹이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그리고 가격은 보통 어느정도인지 알고싶네요

특별히 아끼면서 다니고싶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이것저것 호화를 누리면서 쓰고다니고 싶지도 않아요

그저 어느정도 넉넉히 갖고 가고 싶은데

지금 생각중인건 100만+@ 정도 생각하고있는데

괜찮을런지

현지 인도인이랑 인도를 여행할수있다면 하겠어요?

저희 형의 직장동료중 한명이 인도인인데..
저희집에 자주 초대하고 그러다가 친해졌어요.. 사연은 뭐 말하자면 김
아무튼 그친구가 올해까지만 일하고 관둔담에
내년 가을학기에 미국으로 석사따러간다는데
그래서 내년 6개월정도는 논대요
그리고 걔가 남인도 뱅갈로 출신이라 
북인도 제대로가본적이없어서 자기도 북인도 여행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일정, 출발시기가 딱 맞거든요 저랑.
한달정도 북인도를 여행계획으로세웠을 때
아무래도 인도출신사람이랑 다니면 많이 편하지않을까요?ㅋㅋ
적어도 사기는 안당할꺼고, 몰랐던 현지문화 이해도 좀 더 빠를꺼고..
단지 걸리는건 혹시나 모를 문화차이때문에 여행중에 껄끄러운 일이 있을까봐..그건데요
근데 뭐 여태까지는 특별한 문제점없이 잘 지내온사이라
여행때 갑자기 서로 돌변하지만않는다면 ..ㅋㅋㅋ 성격도 잘 맞는 편이라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영화나 보자

나 여행다닐때 한창 재밌다고 소문나고 그랬는데

정작 영화관 가서 딴거 봐서 아쉬웠음

근데 요즘 돌아다니더라 쓰리이디엇

역시 인도영화이기 때문에 다이나믹한 맛이 있고 

스토리는 살짝 유치한데 재밌음

중동여행기~ 이집트 룩소르-카이로

2010.06.29기차를 타고 룩소르에 도착하니 6시6시는 해가 서서히 지면서 마지막까지 지면을 달구는 시간이다8시는 넘어가야 좀 어둑어둑해지는 듯룩소르 역에 도착하자마자 나타난 유명하신분이집트의 네임드 '만도'아마 룩소르에 온 사람들은 반드시 만낫을 이사람,기차 도착할 시간이면 항상 역 근처에 있거나 자기 심복들을 배치해두고자기 호텔로 데려가거나 다른 호텔에 소개해주고 중개료 받는데이사람이 유명한 이유는 발음이 이상하지만 나름 한국어를 조금 쓴다는 점 때문그런 그가 룩소르에 도착하자마자 나타났다"어디가요??"만도에 대해서는 좋다 나쁘다 여러가지 말들이 많은데(뭐.. 바가지 씌우려는 소문도 있고.. 내가 겪어 본 바로는 그래도 믿을만한사람)시설이 뭐.. 후지긴 후졌는데 솔직히 이 동네 호텔이 다 이렇지뭐일단 만도네 호텔이 에어콘 딸린 방치고는 꽤 싼편이여서 (20파운드, 4000원쯤) 두말없이 따라갔다이 호텔이 재밋는게 호텔 옥상에 있는 식당에서 닭도리탕을 파는데 이게 한국 여행자 사이에서는 명물!만도가 예전에 한국에서 일할때 배워왔다는데 맛은 좀 달고 고추장이 없다보니 대체로 어설프다그래도 가격에 비해 양이 많아서 남자2~3명이나 여자3~4명 파티 짜서 먹으면 괜찮지 싶었다 (40파운드)..호텔에서 간만에 한국사람하고 같은방을 쓰게되서 며칠 동행하는걸로 했다호텔에서 만난 k군과 같이 룩소르 신전으로~룩소르 신전은 동네 한가운데에 있어서 밤에 산책하는 느낌으로 갓다오면 적절하다이곳은 중왕조 후반쯤에 지어져서 많은 개조가 이루어 졌다고 한다이집트에 있는 신전들이 거의 그렇지만 그 세월동안 이렇게 완벽하게 보존됬을리는 없고어느정도 파괴된것을 복구해서 지금처럼 예쁘게 단장한것인데나랑 같이갔던 k는 그런식으로 복구해두는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음.. 나는 오리지날은 아니여도 원래 과거에는 이랬다~ 하고 의미를 찾아서 보면 괜찮지않을까 싶었다아래가 들찍혔는데 연꽃가지로 파피루스를 묶고 있는 부조이다상이집트와 하이집트가 하나로 합쳤음을 의미하는 것(상이집트는 룩소르 등 이집트 남부, 하이집트는 카이로 등 이집트 북부를 가리킨다)오른쪽에 서신분은 Ang?!!?은 아니고 민 신. 풍요의 신이다...2010.06.30다음날 서안투어를 갔다서안은 나일강 서쪽을 의미하는데 거의 사막이나 다름없는 곳이다그래서 옜날에는 서쪽을 죽은자의 땅으로 여겨 여기에 무덤들을 만들어 놓았는데이게 지금까지 남아서 유명한 왕들의 계곡이라든지 장례신전같은 건물들이 남아있는것이다걸어서 가기는 너무 멀고 자전거를 타고 가려니 무지막지하게 더우니(아스완하고 비슷함)하는수없이 투어로..왕가의계곡 안에서는 사진을 찍지못하게 한다그래서 사진 업ㅋ엉무덤 안에 부조가 색감이 살아있어서 상당히 흥미롭고 좋았는데좀 이집트에 대해 뭐라도 알고 보지않으면 실망할수도 있겟다 싶었다..하트셉수트 장제전은 말그대로 장례신전인데이 하트셉수트라는 사람은 여자의 몸으로 파라오를 했던 사람이다나름 아프리카랑 교역도 하고 제법 수완이 있는 여자였나보다근데 나중에 자기 아들인 투트모세3세에게 미움받아버린다. 그렇다고 뭐 별 일이 일어난건 아니고투트모세3세는 엄마가 죽고나서 핫셉수트의 카르투슈를 지우고 신전에 있는 오벨리스크를 가려버리는 쪼잔한 복수를 한다(나중에 나오는 카르나크 신전에 있음)사실 이집트사람들한테 이름을 세기는 카르투슈같은것은 마법적인 의미가 있어서그걸 지워버리면 일종의 저주를 거는것과 같다고 생각했었댄다하토르여신 하토르 여신은 이집트 신들 중 에서도 특이하게 정면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오시리스의 모습으로 조각된 하트셉수트사진에 열중하는 k군. 얘는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는데생각이 독특해서 얘한테 이것저것 많이 배웟다..왕비의계곡도 사진못찍어서 사진 업ㅋ엉ㅋ왕비의 계곡에서는 아멘호르켑세트(이름 틀릴수도..)의 무덤이 정말 인상적이다아멘호르켑세트는 람세스3세의 아들이다. 아들인데 왜 왕비의계곡에 있을까?람세스3세가 아들을 못얻다가 힘들게 얻은 아들이 얜데, 어릴때 죽어버렸다고 한다그래서 람세스3세가 너무 슬퍼서 왕비의 무덤에라도 무덤을 만들어 줬다는 뭐 흔한이야기.이곳이 인상적인 이유는 안에 부조때문인데원래 무덤에는 신들에게 조공을 바치는 파라오(내지는 무덤주인)의 모습이 부조되어있는데이 무덤에는 죽은 어린아들을 산 파라오가 신에게 소개하는 모습이 조각되어있다이게 뭔가 짠하다고나 할까..아무튼 사진은없어ㅇㅇ...다음은 멤논의 거상아멘호텝3세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석상이 인기인건뭔가 다 망가진듯 하면서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자태 떄문이 아닐까..멤논의 거상이라는 이름이 붙은것은 그리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서 붙인것 뿐투어를 마치고 나서 오후1시쯤 되었는데 태양이 어찌나 사납게 내리쬐는지그냥 맥도날드에서 밥먹고 3시간쯤 뻐겼다또 희얀한게, 이집트 맥도날드는 우리나라보다 더 비싸다물가는 우리나라보다 훨씬싼데.이집트 사람들은 한번 먹기도 힘들고 외국사람들만 줄창.. 좀 돈있는 이집트사람도 있긴 있엇지만밤에는 식당을 찾아 다녔는데룩소르가 워낙 관광객이 많다보니 가격 자체가 비싸고뭐라도 덤탱이 씌워볼려고 하는 사람들때문에 질려가지고동네 빵집같은데에서 빵이나 사먹고 말았다근데 이 빵집이 또 사람 엿맥이는데.. 지금말고 나중에;2010.07.01..아침 일찍 동행자 K와 함꼐 카르나크 신전으로 향했다카르나크 신전은 단일 규모로는 세계최고의 부지 면적을 자랑하는 곳인데동네 이름이 카르나크라서 카르나크 신전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이곳도 역시 중왕조 시절에 처음 만들어져서 그후로 프톨레마이우스 시대까지조금씩 조금씩 덧붙여가면서 지어지다보니 규모가 엄청나게 커진 케이스.이집트의 좀 되는 파라오들은 다 뭘 하나씩 지어놨기때문에 그런걸 찾아보는것도 나름의 재미라고 하겠다이집트의 신전들은 대부분 탑문->열주실->다주실->성소 구조로 되있는데사진 가운데 커다란 벽같은게 탑문이고 그 뒤로 열주실양대가리 스핑크스. 스핑크스도 여러가지 모습이 있다카르나크 신전은 특히 중앙 신전의 열주실이 유명하다성스러운 연못. 이집트 신화에 보면 처음에 세상은 혼돈의 바다로 이루어져있는데거기에서 태양신 라가 그냥 뿅 나왔다고 한다.자기가 자신을 스스로 창조했다고 함ㅋ암튼 연못은 혼돈의 바다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만든것이집트 유적들은 벽에 세겨진 부조들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뭔가 복잡한듯 하면서도 보다보면 안정감 있다고나 할까..부조 내용은 아문신, 호루스신 등 숭배아문신.. 아마도;전에 투트모세3세가 엄마인 핫셉수트를 미워해서 찌질한 복수를햇다고 했는데여기 보면 왼쪽 오벨리스크는 투트모세3세가 지은것이고 벽으로 둘러 싸인 오벨리스크는핫셉수트 여왕이 지은것인데 여왕이 죽고나서 투트모세3세가 벽을 만들었다고 한다ㅋ카르나크 신전에 화장실같은거 있고 약간 언덕진곳에 올라가면 신전 전경을 찍을수 있는곳이 있는데여기에 이집트 아저씨 몇명이 앉아있다가 올라가면 다보인다고 올라가보라고 해서 올라갔다가내려오는데 아니나 다를까 "머니 머니~" 하면서 접근. 쌩까려다가 1파운드 줬다이상하게 여행을 나오면 얼마 안되는 돈에도 사람이 인색해진단말야.. (1파운드=200원)가운데 개구리같이 생긴건 쇠똥구리스카라베라고 부르는데, 옜날 이집트 사람들은 쇠똥구리가 똥굴리고 가는게 태양이 뜨는 모습같이 보였나보다그래서 쇠똥구리에 탄생의 의미를 담아서 부적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영화 미이라에 나오는 살파먹는 버러지도 여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온것. 물론 살파먹는 풍뎅이같은건 업ㅂ다..카르나크 신전을 보고나서 또 1시쯤되니까 지옥타임 시작바로 맥도날드로 들어가서 4시간정도 그냥 버텼다. 이시간에는 맥도날드밖에는 시원할만한곳이 없다아 그러고보니 웃기는 빵집이야기전날 저녁에 빵을 사러 갔더니 머핀 하나에 1파운드라길래 뭐.. 그런갑다하고 먹었는데아침에 가니까 1.5파운드 달라고 해서 너이 새1키가 또 사기치네 싶어서 그냥 안먹었다근데 룩소르가 워낙에 관광객물가가 짜증나서(비싼게 아니다.)그냥 1.5주고 빵으로 때우자 싶어서 저녁에 또갔더니이번엔 2파운드.. 무슨 갈때마다 가격이 더 올라이걸로 상이집트와는 이별!! 카이로 찍었다가 멀리 사하라 사막의 끝자락 시와로~사진은 이집트 3등열차인데, 안에 조명도 없는거같고 좀 우울하다2등열차는 그래도 좀 열차같은데 에어콘이 없다. 근데 유리창도 안열린다.1등열차는 에어콘완비. 근데 에어콘 너무틀어서 추움ㅋ아스완에서 룩소르 올라올때는 2등열차를 탔는데, 표 없어도 시간 맞춰서 열차 탄다음 표검사 할때 돈 내면 된다아무튼 뭘 하나 해도 어설픈 이집트였다..2010.07.02..야간열차를 타고 카이로로 복귀이날 금요일이 였는데 이슬람 사람들은 금요일날이 쉬는날이다모스크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카이로에서 제일 인기좋은 모스크인 후세인 모스크에는 정말 많은 인파가 몰린다저 파라솔은 예배날에만 펴서 야외에서 예배볼수 있게 해둔것이였다평소에는 접어놔서 그냥 기둥인줄 알았음;칸 알 칼릴리 시장에서 기념품 사러 유명한 조르디라는 가게로 갔다조르디는 정가제라서 유명. 이집트에서 기념품같은거 살라면은 흥정이 기본인데이게 익숙치않은 사람한테는 꽤 피곤한 짓이라서 조르디를 많이들 찾는다길이 좀 햇갈리는데 동네 경찰아저씨한테 물어보니까 알려줬다(..??;;)무척 유명한모양.히비스커스 주스를 파는 아저씨. 옆에 앉아 있는 딸애도 같이 장사한다히비스커스는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볼수 있는 꽃차이슬람지구에서 동쪽으로 조금 가면 북쪽묘지 지역이 나온다일명 죽은자의 도시라는 곳인데, 뭐 언데드라도 출몰해서 그런건 아니고예전에 공동묘지로 썻던곳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집안에 무덤이 있는 기이한 형태가 되었다고길가다 만난 한인민박집 아줌마한테 좀 위험한 동네라는 소문을 들어서약간 긴장을 했지만 그다지 그런 느낌은 받지 않았다..이제 짐을 챙겨서 투르고만 버스정류장으로 갈 시간가는길에 아타바광장을 지나서 갔는데인산인해에 차들도 많고 거기에 인도, 차도 구분이 없는 초 혼돈 상태괜히 혼돈의 도시가 아니라니깐망고주스 파는 청년. 한잔에 1파운드밖에 안하는 저렴함(정가가 1파운드. 관광객에게는 1~5파운드까지의 넓은 바리에이션)이집트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착한사람들이다 뭐라도 도와줄려고 하고 좀 환영받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자주 있다뭐.. 자꾸 사기쳐볼려고 들어서 그렇지ㅇㅇ이제 오아시스의 도시 시와로..야 근데 이거 글쓸때 가운데로 글이 안모아져 잉잉 이거 어떻게함

중동여행기~ 이집트 카이로-아스완

2010.6.27아타바광장부터 걸어서 시타델까지 가려다가 생고생했다;아타바에 중앙우체국이 있어서 편지보내러 갔는데 중앙우체국이라고 하기엔 시설이 좀 열악했다다들 영어도 못하고.. 설상가상 호텔에 편지를 놓고오는 어처구니없는 짓까지 겹쳐서;아..왜온거야기왕 온김에 한푼이라도 절약하고 아타바부터 이슬람지구를 지나서 시타델까지 가기로 결정!지도와 나침판을 무기로 어렵게 이슬람지구까지 도착알 후세인 모스크는 아침부터 기도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여기서부터 이슬람지구의 골목길을 관통해서 시타델까지 가야하는데길이 꽤나 복잡해서 물어물어 찾아가야했다근데 진짜 희얀한게, 이 동네사람들어째 길을 물어보면 다들 어떻게든 가르쳐주려고 하는건 정말 친절하고 좋은데자기가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할것이지 엉뚱한길을 가르쳐주는 습관들이 있는듯하다모른다고 하는게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인지.. 자존심이 쌘 민족이라고 듣긴했는데 말이다아예 서로 정반대 길을 알려주기도 하니까 다 믿으면 길을 해멜수도 있을거같았다앉아서 잠깐 주무시는 할아버지중간에 차가 마시고 싶어서 아무데나 들렸다이집트에서는 차를 샤이라고 하는데 대체로 설탕을 많이 넣는편이다 또 스피어민트를 넣어서 먹기도 한다찻집에서 냐냐 라고 하면 스피어민트를 저런식으로 주는데 한잎만 넣으면 화한 향이 돌아서 맛이 좋다이집트도 그렇고 이슬람세계 어디를 가나 볼수있는 물담배이집트에서는 시샤라고 부르는데, 그냥 담배의 역한 맛이 없어서비흡연자인 나도 큰 부담없이 빨아볼수 있었다. 근데 사진이.. 너무 느끼는데ㅋ; 부끄러워서 눈삭제카이로의 골목걸어서 한 1시간쯤 가서 겨우겨우 시타델 도착ㅠ시타델은 유명한 살라흐 앗딘이 지어서 조금씩 증축해서 지금 모양이 됬다고 한다시타델의 상징같은 무함마드 알리 모스크는 1800년대 후반에 지은건물이라서카이로의 다른 모스크와 디자인이 상당히 틀리다카이로의 대부분의 모스크는 맘루크풍이라고.. 지붕에 둥근 뚜껑?이 없는게 특징인데이 모스크는 터키에 있는 블루모스크를 따라 만든거라서 뚜껑이 달려있다무함마드 알리 모스크 내부겉도 내부도 크고 화려하긴 하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모스크에 기도하러 온 사람도 별로 없고 관광객만 가득 차있는 느낌이여서 그랬는지구지 말하자면 알 아즈하르 모스크가 더 차분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이거 말고도 시타델 안에는 이런저런 박물관이 있긴한데 날이 안좋았는지 문을 안연것 같아서 패스;..걸어서 이븐툴른 모스크까지 가려다가 길을 잘못들어서 2시간정도 하염없이 걷고 걷고아까도 말했지만 이집트사람들이 길을 물어보면 엉뚱한길을 알려줄때가 좀 있다중간에 물어본 사람중에 하나가 제대로 엉뚱한길을 알려줘서ㅠㅠㅠ여름, 카이로의 한낮은 섭시 40도를 가볍게 넘어 버린다. 터무니없는 더위다햇빛을 받으면 살이 따겁고 정말 탈것같은 느낌까지 든다그래도 이 동네 사람들이 살아 갈수 있는게, 우리나라랑 틀리게 습기가 적으니까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더워도 땀이 많이 나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점 때문.그리고 그늘만 들어가도 꽤 시원하다. 우리나라는 그늘에서도 더울땐 그냥 더운데하도 더우니까 정신이 멍.. 여긴어디 나는누구 헤헤헤 하다가얼떨껼에 도착한곳이 바로 올드카이로올드카이로는 콥틱이라고 부르는 이집트식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사는곳이다이집트가 로마지배를 받을때 기독교가 유입되서 아직도 믿는사람들이 남아있다고 한다여기에 동굴교회와 공중교회가 있다동굴교회안에 있는 동굴입구동굴교회는 세르기우스 교회라고도 하는데 이 동네 사람들은 무까담 키씨나 라고 불렀다동굴교회는 신약성경에 예수가 태어났을때 헤롯왕이 3살 이하 애들을 다 죽이라고 명령해서이집트로 피신했다고 하는 내용이 있는데 그때 성모마리아가 피신했던 동굴 위에 지었다는 사연이 있는 곳이다뭐.. 진짜 여기인지는 확신할 길이 없지만, 여기 근처 어딘가인건 맞겟지?서양사람들은 쓰다듬고 뽀뽀하고 난리도 아니였는데 신자가 아닌 나는 그냥 멍..동굴안이 사람 열기+ 원래 더움ㅋ 때문에 1초도 더 있고싶지않아서 얼른 나와버렸다공중교회콥틱의 가장 중요한 교회인데 이집트 향을 잔뜩 머금은 교회가 독특하고색감도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곳이였다 올드카이로에서 걸어서 여행은 접고 지하철 타고 이집트박물관으로~카이로는 아프리카대륙에서 지하철이 놓인 유일한 도시라고 한다이집트 박물관에 들어갈때 짐검사를 꽤 까다롭게 했다그리고 안에서는 사진을 찍을수가 없다... 아쉽지만 밖에 사진이라도.이집트박물관 앞에 있는 연못에는 파피루스랑 연꽃이 자라고 있는데연꽃은 하이집트 파피루스는 상이집트를 상징한다고 해서 두 이집트를 합쳤다는 의미로 같이 기르는거랜다상이집트는 나일강 상류를, 하이집트는 나일강 하류와 델타삼각주를 가리키는것ㅇㅇ이집트 유적의 부조 같은데서도 파피루스와 연꽃은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이집트박물관을 세우는데 초석을 세운 오귀스트 마리에트옜날 이집트정부는 유물이 훔쳐가든 반출되든 훼손되는 별 신경도 쓰지 않았었다고 한다그래서 유럽 박물관에 그렇게 이집트 유물이 많았던건가..그런 때에 이 사람이 유적들을 모으고 정리해서 박물관을 세울 기반을 마련했다고 한다다시 지하철을 타고 게지라섬으로~ 나일강의 닭둘기이집트사람들은 비둘기를 다양하게 요리해 먹는데 닭처럼 살이 많지가 않다좀 고급음식점에서 먹은 닭둘기. 아유 사진 너무어둡네ㅋ둘기는 여러가지로 요리해먹는데 사진에 있는건 둘기에 닭을 채워서 구운것.고소하고 맛잇어서 뼈까지 다씹어먹었다!근데 비싼집에서 먹어서 좀 비쌌다..; 저 조그만한게 30파운드 허허허;저녁에는 밤기차를 타고 아스완으로~아니 근데 룩소르 표를 달랫더니 왜 아스완표를 준대.. 이사람들 진짜..;..2010.06.28야간 열차를 타고 카이로에서 아스완으로이집트 열차는 1~3등급과 슬리핑카가 있는데 외국인은 2,3등급 표를 살수 없다그래도 표없이 일단 기차에 탄다음에 표 끈으러 왔을때 표값을 내면 탈수 있긴있다갈때는 1등 야간열차를 탔는데 에어콘을 어찌나 세게틀었는지 정말 추웠다..아스완은 상이집트에서도 거의 맨 아래에 위치한 도시인데적도 근처라서 겨울에도 20도정도 따듯한 날씨이고 여름에는 50도까지 올라가서한국에서만 살다가 온 나는 도저히 상상할수 없는 날씨였다여름에는 오후 1시 이후에는 그냥 호텔에 들어가 있는게 건강에 좋을것같았다차타고 가면 창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너무 뜨거울정도나름 향신료에 관심이 좀 있는데 정말 이상한 향신료가 많아서 놀랐다. 특히 저 별가사리..뭐에쓰는걸까아스완에 한글메뉴가 써있던 식당.가격도 이성적이고 맛도 괜찮았다저거 치킨말고 양고기로도 시킬수 있는데 진짜 쪼금 줘서 실망ㅇㅇ사탕수수 주스집1파운드(200원쯤)라는 저렴한 가격에 주스를 마실수 있다망고나 다른 과일들도 생과일주스로 싸게 판다잠시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나일강 근처까지 갔는데어디서 나타났는지 펠루카(배) 호객꾼 등장"친구야 안녕? 펠루카 어때?""너한테만 특별히 싸게 해줄게"등등.. 뭐 이 동네 사람들 호객 레파토리가 다 똑같다. 친구라느니, 너한테만 특별히 준다느니. 물론 뻥근데 그래도 왔으니까 배한번 타보자 싶어서 속는셈치고 따라서 탑승근데 이 사람.. 배 띄우고 나니까 말이 바뀌더니 2시간은 타야 다 돌수있다고 처음부른 가격에 2배를 부르네?;이리저리 따져보니까 그래도 손해볼건 없어서 알았다고 하고 출발은 했는데무슨놈에 투어 권유를 그렇게 많이하는지, 조용히 경치구경좀 하려그랬더니나일강은 이집트사람들과 대조적으로 잔잔하다아카칸의 무덤. 옜날에 돈많은 귀족이 병들어서 고생하다가 꿈을 꿨는데 여기다가집을 지으면 병이 났는다고 해서 지은 집이 저거라고 한다. 저기서 살다가 죽어서 가족들이 그대로 무덤으로 썼다고.올드카타락트호텔. 에거서크리스티가 머물면서 소설을 썻다고 해서 유명한 호텔..아스완에는 아랍사람들 말고도 누비안족이라는 사람들이 사는데상이집트와 수단에 걸쳐 사는 민족이다엘레판틴 섬에 아스완 마을이 있는데 이집트의 다른 마을과는 약간 틀려서좀더 아프리카 분위기를 풍긴다이집트 사람들은 길가에 항아리를 놓고 물을 담아서 오며가며 자유롭게 마신다저렇게 해놓으면 과학의 신비로(자세히는 잘..;) 시원하게 유지된다고 한다마을안에서 양을 저렇게 풀어놓고 기른다마을 촌장집이라고 악어머리를 문앞에 달아놓았다배타고 나서 너-----무 더워서 숙소로 속히 복귀.저녁에는 따메야를 먹었다.정확히는 저 걸레빵 안에 넣은 튀김같은걸 따메야라고 하는데 누에콩을 으깨서 튀긴거라고 한다이 동네에선 아침에 따메야랑 토마토 오이 참깨소스정도 넣어서 걸레빵에 싸먹는게제일 흔한 아침식사이다. 근데 저녁으로 먹엇네?;...2010.06.29여행객들이 굳이 멀고 더운 아스완까지 찾아오는 이유중 하나는여기를 기점으로 아부심벨 신전을 가는것이 편리하기 떄문!아부심벨은 이집트와 수단 국경에 거의 맞닿아 있는 마을인데아부심벨신전을 보려고 여기까지 찾아가기에는 조금 부담이 있기때문에아스완에서 투어에 참가해서 보러가는 사람들이 많다투어는 새벽3시부터 버스를 타고 출발해야한다버스를 타고 4시간쯤 가면 아부심벨 신전에 도착하게 된다아부심벨 신전은 유명한 람세스2세가 지었는데규모면에서나 얽힌 사연에서나 이래저리 유명한 곳이다.아스완 하이댐을 건설하면서 수몰될뻔하던걸 유네스코와 여러 나라의 도움으로 통째로 옮겨서지금 위치에 있게 됬다는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유적의 부조들은 람세스2세가 카데쉬전투에서 펼친 활약에 대해 자랑하는 내용이 많다커다란 석상이 버티고 있는 신전 입구.만든사람도 대단하고 옮긴 사람도 대단하고카데쉬전투에서 잡아온 노예들이라고 그려놓은거입구 바로 위에 태양신 라의 조각이 있다토트신(왼쪽)에게 감사인사를 하는 파라오의 모습원래는 내부에서 사진을 찍을수가 없다내가 갔을떄는 다들 바깥사진만 찍고잇어서 안에 아무도 없길래 얼른 들어가서 쪼금 찍었다;양인들도 몰래 찍는거 같았으니까 괜찮겟지 아마..ㅋ대신전 옆으로 좀만 가면 있는 네페르타리 소신전람세스2세가 아내 네페르타리를 너무 사랑해서 지어줬다고한다소신전이라곤 해도 이거도 상당히 크다안에는 하토르여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부조가 그려져있다아스완 하이댐이 생기고나서 이렇게 큰 호수가 생겼다아부심벨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아스완 근교까지 와서 롱투어 신청한 사람은 따로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롱투어는 댐이랑 필레신전 오벨리스크를 좀 더 보고 돌아가는 코스.아스완 하이댐의 기념탑먼저 아스완댐으로 갔는데 입장안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서그사람들만 입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나도 안들어가고 잔류그런데잠깐 화장실에서 배설좀 하고 나오니까 어..아무도 없네?...;가이드라는 사람이 인원 한명 없어졌는데 확인도 안하나..?(아니 그보다 다른 사람들은 나 없어진거 알았으면 좀 차좀 세워주지..흑흑)어떻게 지나가던 차 잡아서 아스완까지 돌아오긴했는데성질이나서 투어 신청햇던 호텔에다가 따졌더니 자기들은 책임이 없단다뭐 그야 책임이 없는게 사실이긴 하지만.안그래도 끔직하게 더운데 성질나서 그날 오후기차로 바로 룩소르로 빠졌음ㅋ------저번에 올렸던거에서 이어서.. 좋게 봐줘서 고맙다ㅇㅇ근데 니들아 궁금한게 있다내가 글 쓸때는 가운데 정렬로 썼는데 막상 올리면 가운데정렬이 안됀다이거 왜그런거냐?? 블로그에 쓴다음 갓다 붙여서 그르나?

내 생애 가장 젊은 날 -세상에서 가장 높은 마을 Leh

900) {
objImg.width = 900;
}
}catch(e){
}
}

function ParanImgBorderResize_Re(no)
{
try{
var objBorder = document.getElementById("paranimg_b_"+no);
var objImg = document.getElementById("paranimg_m_"+no);

var nImgWidth = parseInt(objImg.width);
if(nImgWidth < 240) {
objBorder.src = 'http://wstatic.dcinside.com/manage/paran/paran_s.gif';
} else if(nImgWidth > 900) {
objImg.width = 900;
}
}catch(e){
}
}

var ppdInfoTop, ppdInfoLeft;
function show_pInfoBT(paranImgId, paranCnt, bShow) {
var nWidth = document.getElementById(paranImgId+paranCnt).width; //이미지폭
var nHeight = document.getElementById(paranImgId+paranCnt).height;


infoDivId = "imgInfoArea_"+paranCnt;

//document.getElementById(infoDivId).style.left = (nWidth-64)+'px';
document.getElementById(infoDivId).style.top = (nHeight)+'px';

ppdInfoLeft = nWidth;
ppdInfoTop = nHeight;

if(bShow) {
document.getElementById(infoDivId).style.visibility = "visible";
} else {
document.getElementById(infoDivId).style.visibility = "hidden";
}
}

function getRealOffsetTop(o)
{
return o ? o.offsetTop + getRealOffsetTop(o.offsetParent) : 0;
}

function getRealOffsetLeft(o)
{
return o ? o.offsetLeft + getRealOffsetLeft(o.offsetParent) : 0;
}

function show_pInfo(paranImgUrl, nCnt){
var nMovePosX = Math.ceil( (window.screen.width - 470) / 2 );
var nMovePosY = Math.ceil( (window.screen.height - 328) / 2 );

divpop = "imgInfoArea_"+nCnt;
document.getElementById(divpop).style.visibility = "hidden";

strURL = "http://pudding.paran.com/popup/exifInfo.php?origin_url="+paranImgUrl;
window.open(strURL, 'ppdImgInfo', 'left='+nMovePosX+',top='+nMovePosY+',width=470,height=328,scrollbars=No,menubar=No,resizable=No,status=No,toolbar=No');
}

function viewPic_pop(img){
foto1= new Image();
foto1.src=(img);
contImg_pop(img);
}
function contImg_pop(img){
if((foto1.width!=0)&&(foto1.height!=0)){
viewImg_pop(img);
}
else{
funzione="contImg('"+img+"')";
intervallo=setTimeout(funzione,20);
}
}
function viewImg_pop(img){
largh=foto1.width+10;
altez=foto1.height+10;
stringa="width="+largh+",height="+altez+",scrollbars=yes";

window.open('http://wstatic.dcinside.com/gallery/paran_pop.php?img='+escape(img),'preview',stringa);
}

>




















































   1. 레 로 가는 길
    
 다음 생애에선 히말라야에 태어나기를 … 
 레로 가는 길 위에서 09.07.02
  
 “어디야? 차 출발해!”

 
나는 전화 너머 들려오는 황급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새벽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십분 후면 차가 떠나버리고 말 것이다.  마르지 않은 양말과 속옷을 그대로 가방에 쑤셔 넣고는 새벽의 찬 공기 속으로 뛰쳐나갔다. 
 
지난 몇 개월을 꿈꿔왔던 날이다.
 
 샤워의 상쾌함도 잠시, 화장실을 나오는 그 순간 온 몸에 질척이는 짜증이 되어버리는 인도의 찜통 더위 속에서,

갈 만한 곳은 “히말라야” 뿐 이었고, 그 곳에 간다면 단지 시원하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렇게 결정한 히말라야 행이었다.
 
 혹시 나 때문에 차가 출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한걸음에 달려 도착했지만,  
짐이 많은 여행객들 덕분에  따뜻한 짜이 한잔을 다 비우고 근처 베이커리에 딱딱한 빵 하나를 사서 돌아 왔지만

여전히 우리 차는  출발할 기색을 보이질 않았다.

이미 짐을 지붕위에 올린 여행객들은 하릴 없이 차 주변을 지키고 서있다. 


히말라야가 아닌 동네 뒷산에 오를 때나 가져갈만한 작은 나의 가방을 차 지붕위에 동여매는 일로

드디어 모든 출발 준비는 끝나고 우리는 차에 올랐다.  
 
도대체 사람들은 무슨 짐이 그렇게 많이 가져가는 것일까?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다니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나로서는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나 떠나야 하는 여행자는 제 몸이 가벼워야만 여행길이 즐거울 수 있는 법인데, 사람들은 ‘도중’의 즐거움을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지금처럼 어디론가 곧 떠나기 위해 있는 이 순간이 제일 좋다. 반드시 어디에 도착해야만 즐거운 것은 아니다.

가기 위해 걷고, 기다리고 또 버스를 타고 있는 그 순간 한없이 흥미로운 그 마음이 좋은 것이다.

그러니 쓸데없는 것들 다 끌어 모아 이고지고 다니면서 육체를 피곤하게 함으로써

오직 어디엔가 정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되는 여행은 거짓인 것이다.
 
 지프차에 탑승할 사람은 모두 13명이었다. 그 중에 무려 6명의 한국인이 같은 차를 타게 되었다.

델리에서 우연히 만나 마날리 까지 함께 올라오게 된 은경언니와 그의 사촌동생도 찬 공기에 옷을 꽁꽁 싸매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앞좌석에는 경상도 아저씨라고 해도 믿을 법한 네팔인 운전수와 정말 히말라야에 가는 것인지

아니면 그 곳에 숨겨둔 여자 친구라도 있는 건지 한껏 멋을 낸 그의 조수와

그리고 정체불명의 현지인 아주머니가 그 두 사내의 좁은 공간에 비집고 앉았다.

모두가 제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경상도 아저씨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아저씨는 정말 운전하는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시내의 사거리까지 미끄러지듯 빠져나온 차는 갑자기 멈춰 섰다. 바쉬쉿 온천으로 올라가는 길이 교차한 지점이었다.
 이미 늦었는데 또 무슨 볼일이 생긴 걸까? 나는 빠끔히 창밖을 내다본다.
 감색 가죽점퍼에 붉은색 털모자를 쓴 건장한 사내가 차로 올라탔다.
 저벅저벅 뒷자리로 가 앉는 그를 나는 등 뒤로 느낄 수 있다. 내 뒤에 앉은 30대 한국인 아저씨의 바로 옆 좌석이다.
 곁눈질로 힐끔 바라 본 그의 모습은 말보르 담배나 그레이트 캐넌을 떠오르게 했다.
 물론 그레이트 캐니언은 둘째 치고 말보르 광고도 제대로 본적은 없지만 어쨌든 그에게선 방랑하는 고독한 사나이의 향수가 났다.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어느 나라 사람일까?’
 뒤에 앉은 그를 향한 호기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눈앞에 설산이 펼쳐졌다.
 새벽의 푸르스름한 기운으로 난생 처음 보는 관경은 더욱 장대한 드라마였다.  나는 창문에 어리는 찬성에를 지우고 또 지우며 하얀 히말라야를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하나 둘 옷매무새를 꽁꽁 잠그며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하나도 춥지 않았다. 그저 입이 히죽거릴 만큼 행복했다.
 하얗고 거대한 도화지에 위에 오직 두 개의 조그맣고 까만 점이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란… 그때 앞서 가던 까만 지프가  멈춰 섰다. 머지않아 운전수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바퀴가 빠진 모양이네 …….” 뒤에 앉은 아저씨의 말이었다. 작은 언덕이 있었던 모양이다.

미끄러워서 여러 번 바퀴가 헛돌고 있었다. 우리의 운전수도 터프하게 차 밖으로 뛰어 내려 그 곳으로 갔다.

승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곳으로 쏠렸다.
 이윽고 운전수들은 무언가 계획이 세워진 듯 차분히 움직였다. 우리네 차가 먼저 언덕을 오르기로 했다.

경상도 아저씨가 다시 차에 올라타고 시동을 걸었다.
 ‘부릉 - 부르르릉 - ’  
 몇 번의 시도 끝에 우리 차는 언덕 위를 오를 수 있었다.  이제 문제는 뒤 차였다. 우리 차와 뒤차를 끈으로 연결 했다.  과연 저런 방법이 성공할 수 있을 까 상당히 의심이 갔다. 그때 갑자기 뒤에 앉은 고독한 사나이가 운전수를 돕기 위해 몇 마디를 했다. 상황을 미루어 보건데 ‘좀 더 오른쪽, 아니 왼쪽.’ ‘네네, 좋아요.’와 같은 말일 것이다.
 ‘아니, 힌디를 할 수 있다니……. 웬만한 여행자가 아닌 걸…….’
 지난 4개월간 뱅골리어에 파 묻혀 지냈으면서도 “오늘은 ***을 먹었습니다.” 등 과 같은

5살짜리 어린 아이 수준에서 발전이 없었던 나로서는 창피한 일이었다.
  이윽고 뒤차도 언덕을 오르는데 성공했다. 차안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덕분에 적막하고 냉랭한 기운이 감돌던 차 안의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하늘은 따뜻한 온기를 품기 시작하며 가벼운 푸른색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_

 한참을 달렸을까? 허리가 뻐근해 오기 시작했다. 얼마가지 않아 네팔인 운전수가 작은 벽돌집 앞에서 차를 세운다.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밖으로 나서 구겨졌던 몸을 편다.
 허리를 쫙 피고 숨을 들이킨다.

가슴 끝 까지 짜릿하다.
 여자들은 여자들 끼리 남자들은 또 남자들 끼리 볼일을 본다. 화장실이 따로 있을 리 없다.

아니, 화장실을 따로 마련한다는 것이 비정상이다.

자연에서 자연스러운 행위를 하는 것에 는 문명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불필요하다.
  
 그 때 문득, 사람들 저편에 홀로 오독 카니 떨어져 있는 가죽점퍼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아까부터 나는 그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나는 내 뒤에 앉은 아저씨( 나는 그의 성을 따서 그를 엉클 정이라고 부르기로 했다)와

대화를 하고 있었지만 눈은 가죽점퍼를 주시하고 있었다.  ‘때는 이때다!’
 나는 그가 볼일을 보러 간 사이 고독한 사나이 곁으로 다가갔다.  
"Where you from?"
“I’m from India, Mumbai”
  그가 인도인이라니!
그는 지난 몇 개월간 보아 왔던 다양한 인도인들(심지어 우리나라 사람들과 똑같이 생긴 Nagin land 사람들까지 봤던 것을 감안해서)을

통틀어 처음 보는 특이한 외모를 아니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정말 믿을 수 없었던 것은 그의 눈에서, 아니 그의 모든 행동과 말투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독함” 이었다.

남자들끼리도 스킨십을 즐겨하는 유대감이 강한 인도인들 사이에서 이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니!

무엇보다 그는 지금 홀로 여행을 하는 중인 것이다.

내가 인도를 여행 한다고 했을 때 나에게 돌아오는 첫 번째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께께 숑게 구르베” (누구랑 같이 가니?)
“아미 에까” (나 혼자)
“ …….”

 그의 이름은 아슈 라고 했다. 아슈토시-
아슈의 고향은 찬디가르였다. 그는 현재 뭄바이에서 영상제작 관련 일을 하는 프리랜서였다. 그리고 그는 레에 가서 걷고, 책을 읽고 또 스케치를 할 것이라고 했다!
스케치?! 스케치라니 !  나는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부터 한껏 들떠서 프랑스친구들에게 했던 말이 기억났다.

“난 여행하면서, 맘껏 그림을 그리고 싶어- 같이 그런 것을 즐길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얼마나 좋을까……. “
그러나 늘 그래왔던 대로 그런 행운을 나에게 쉽게 찾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통하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딜 가나 사진 찍기 바쁜 사람들은 많지만 그것에 대해 무엇을 느꼈는지 아주 자세히,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적듯이 말이다.

나에겐 자연 앞에서 진심으로 감동하는 친구가 필요했다.

마음을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일은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
그리고 아슈에게서 기분 좋은 직감을 받았다.



***



























.style2 {color: #CCCCCC}
.style6 {color: #999999}

.ppd A:link {COLOR: #4D4D4D; TEXT-DECORATION: none;}
.ppd A:visited {COLOR:#4D4D4D;TEXT-DECORATION: none;}
.ppd A:hover {text-decoration: underline;color : #4D4D4D;}
.ppd td {font-size:9pt; color:#4D4D4D; LINE-HEIGHT: 140%;}


0){
document.getElementById("ppdBestArea").style.display = "inline";

document.getElementById("ppdTopArea").innerHTML = ptop;
document.getElementById("ppdViewArea").innerHTML = pview;
}
}

function ppdEventPop(){
window.open("http://partner.pudding.paran.com/dc/contest/light", 'ppdEventPop');
}
>









 

다음 인도방랑기

100배 즐기기 작가인 다람살라환타 이사람

뭐 여행도 많이다니고 책도쓰고 성격 특이한건 알겠어

맨날 자게에 나라비판, 정치이야기 어쩌구저쩌고 하는거...직업이 작가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이놈 주변에서 충실한 강아지처럼 왈왈거리는 애들은 진짜루~~ 꼴보기 싫다

내가 아는사람들도 아닌데 그냥 싫어-_- 왜그럴까

키우는 강아지시키들도 아니고,,,,,진심으로 한심해보인다

모해먹고 사는넘들일까??????

논쟁이 되는글이 올라오면 조용~~히하고 있다가, 다람살라 환타가 한마디하면

우르르 몰려와서(고정멤버들, 대략 7~8마리정도 키우는듯) 댓글로 어시스트해준다

지 생각 의지따윈 없이 사는 강아지들같고

특권의식??? 그딴거 장난아니다.



글구 인도에서 현지남자애들 끼고 성관광하는애들 겁나많은데

이거 어떻게든 덮으려고 끙끙거리는거보면 이상하다

아는사람은 다 아닌건데, 어떻게든 덮으려구한다

그게더 이상한데? 남자애들은 동남아가잖아

뭐 숨길게있나?

중동여행기~ 이집트 카이로까지

2010년 6월 24일갑자기 가고싶어져서 계획한 여행.중동이라고 하면 석유 내지는 테러같은 것만 잔뜩 생각나서가기전부터 주위 사람들이 "뭐하러 그런데를 가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그러나 사실은 중동이야말로 역사적으로나, 사람도 좋고 먹을거 많고 여자들도 이쁘고..(히잡벗으면 이쁨ㅇㅇ)꼭 한번 가볼 가치가 있는곳이라고 생각한다어쨌든 그런 우려를 뒤로하고 일단 비행기를 타고 카이로로 향했다급하게 비행기표를 끊느라고 정말 비싼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해야했다인천에서 두바이를 거쳐 카이로로~카이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벌써 주위 시설이 뭔가 후질근해지는게아~ 내가 진짜 중동땅에 도착했구나(사실은 아프리카지만.) 라는 실감이 들었다공항을 나서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몸을 감쌌다이 지역의 여름은 덥지만 건기라서 우리나라처럼 축축한느낌이 없다대신 정말 뜨겁다.비자를 받고 공항에서 나오니 멀리 말로만 듣던 오벨리스크가 보였다카이로 공항이 있는 지역은 고대 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가 있던 지역이여서오벨리스크가 세워져있는거라고 한다오벨리스크 좀 구경하고 이제 카이로 시내로 들어가려고 하는데"어디가요?"그놈에 택시기사양반들이 자꾸 말을건다오기전에 인터넷으로 카이로 공항에서 시내까지 한번에 가는 리무진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지라눈길조차 주지않고 노,노를 외쳤는데어째 시간이 지나도 버스가 올 생각을 않는다..괜히 불안해져서 허둥지둥대니까 택시기사들이 이때다 싶어서 달겨들어서는"버스 없어~ 70에 해줄게 택시 타!""버스 있긴 있는데 시내까지 안가~ 택시타야될껄"거짓말들이나 하고.. 여행첫날부터 성질내가면서 물어물어 시내버스를 타고 카이로 시내로 향했다(결국 리무진은 못탓다.. 진짜 오긴오는건가??;;)시작부터 소문으로만 듣던 이집트사람들을 몸으로 체험했다..아 지쳐;;카이로 시내는 정말 혼란스럽다괜히 사람들이 혼돈의 도시라는 별명을 지어준게 아니다교통은 거의 항상 복잡하고, 신호는 사거리에서만 빼면 그냥 없는거라고 보면 된다길을 건널때 차가 절때 서주지 않기 떄문에 현지인들이 건널때 눈치봐서 따라건넜다;이집트에서 제일 싸게 식사를 해결할수 있는 쿠샤리라는 음식.스파게티같은 음식인데 파스타 콩 밥 가리지않고 다넣고 돈을 더 내면 고기도 넣어준다어디서 들은바에 의하면 이집트 사람들은 주문할때 파스타나 쌀이나 딱히 구별안하고 똑같은걸로 생각한다고 한다도착해서 호텔에 짐푸니까 오후3시쯤이였는데뭐라도 하나 더 볼라고 얼른 이슬람지구로 향했다이슬람지구의 시장길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나오는 밥 주왈리아옜날 카이로 시내를 구분짓는 성문같은거다.카이로는 900년 언제쯤에 만들어졌는데 그 이전부터 이미 어느정도 도시의 형태가 존재했다고 한다 이후에 크게 흥해서 한때는 바그다드를 제치고 이슬람세계의 최대 도시가 된적도 있다고 한다...알 아즈하르 모스크.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대학이라고 한다.지금은 그냥 모스크로 쓰고있는데, 막 화려한건 없어도 조용한 분위기가 좋았다(카이로에서 조용하다는건 대단한것)이집트사람들은 고양이를 싫어하지 않는다우리나라에서는 들고양이는 대부분 쫒아내거나 하는데여기는 그런게 없다.. 그렇다고 딱히 기르고 하는것도 아니다그냥 자기 살게 놔두는 느낌..?알 후세인 모스크 옆 골목.여기는 이슬람 수니파의 성자인 후세인의 시신이 있다..던가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그래서 이란사람이나 시아파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이란사람들은 대부분 시아파, 다른곳은 거의 수니파라고 보면 얼추 맞다)그 옆에 칸 알 칼릴리 시장이 있는데 기념품들을 잔뜩 팔고 있었다여행 시작부터 기념품 살일은 없어서 일단 둘러보고 숙소로~2010년 6월 26일이집트에 왔으면 우선 피라미드!이집트에는 많은 피라미드가 남아있는데대부분은 기자에 있는 제일 유명한 대피라미드만 보고 가지만,구경할만큼 크게 잘 남아있는 곳은 한 4군데정도로 꼽을수 있을것 같다기자, 사카라, 다슈르, 메이둠 정도?다른데에도 피라미드가 있는데, 무슨 흙무덤처럼 되있고 찾아가기도 힘들다고 한다일단 다슈르에 있는 붉은피라미드를 꼭 보고싶어서택시를 하루 전세내서 갔다.(같이 갈사람이 없어서 혼자갔는데 상당히 비쌌다)..나일강지금은 아스완하이댐이 있어서 안그러지만옛날에는 주기적으로 범람해서 이집트사람들이 문명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뭐 다들 아는 얘기겟지기자는 쿠푸,카프라,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가 모여있는곳이다.쿠푸왕의 대피라미드때문에 유명하기도 하고 카이로에서 가기가 편해서대부분은 피라미드를 보면 여기만 오고 나머지는 그냥 패스한다기자를 갔는데 하늘이 이뻐서 사진이 잘나왔다이집트에서는 저리 구름 떠있는 하늘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기억에 남는거라곤 내리꽃는 햇빛뿐기자 피라미드 지구의 남쪽문으로 들어가면 스핑크스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스핑크스의 앞발 사이에는 꿈의 비문이라는게 있는데옛날에 이집트 파라오가 꿈에서 스핑크스가 자기를 꺼내달래서 가서 파봤더니 스핑크스가 나왔대서 세운 비문이다지금은 보수공사를 하는지 원래 못들어가는건지 못들어가게 되어있다언덕길을 오르면 보이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실제로 보면 정말 크고 약 5000년쯤 된 건물이 아직도 이렇게 서있다는게 정말 놀랍다그리고 그곳에 내가 서있다는게 또 놀랍고..근데 어떤분은 그냥 티비에서 본거랑 똑같다고 하기도 했다;대피라미드 안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되는데 이게 꽤나 비싸다그리고 하루 입장객수에 제한이 있다(오전150명 오후150명이였나)들어가서 붐비면 덥고 힘들것같아서 다른 피라미드에 들어가보기로 하고 패스~걷다보면 낙타탄 사람들이 나타나서 호객을 하는데사진을 찍어보라고 포즈를 취한다음 사진을 찍으면 와서 돈을 요구한다일명 "박시시"라는건데, 이집트에서는 상당히 자주겪는일이다별 시덥잖은걸로 돈을 요구해서 가끔 짜증난다또하나 낙타상인들의 유명한 사기중 하나는 태워놓고 안내려주는건데처음에 20파운드쯤 불러서 일단 손님을 태운다음에낙타를 일으켜세우면 낙타가 키가 3미터쯤되서 혼자서는 내려올수가 없다이걸 이용해서 한 50달러쯤 요구하거나 한다고 한다..;;하도 유명하니까 이제 다들 안낚이거나 알면서 타거나 한다참고로 낙타타기 정가는 15파운드랜다ㅋ피라미드 그늘에서 쉬는 아저씨카프라왕의 피라미드윗부분에 옜날에 칠햇던 석회석이 조금 남아있어서 제일 예쁘다원래는 다른 피라미드도 표면 전체에 저렇게 코팅 처리를 했었단다세월이 지나서 다 벗겨지고 안에 있던 벽돌이 드러난거란다멘카우레왕의 피라미드나머지 2개에 비해 포스가 약하다..; 그래도 나름 큰편멘카우레 피라미드를 지나서 사막으로 쭉 나가다보면 피라미드 3기가 한번에 들어오는 장소가 있다스핑크스는 가서 만저볼수는 없고 그 옆에 통로로 가면 구경할수 있는곳이 있다예전엔 스핑크스 등에도 타고 올라갈수 있었다고 한다훼손이 심해서 막아놓은걸까?..사카라는 기자에서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나오는 마을인데이곳은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죽은자의 도시로 여겼던 곳이다그래서 고왕조시대의 여러 왕의 무덤이 있는데그중에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가 있다사카라 유적지대 입구저기 입구에 서있는 가라베야(전통복)입은 남자.. 사기꾼이다.표끊는사람인줄 알았는데 쫒아와서 멋대로 마구 설명하더니"박시시!"..;; 10파운드 주고 치워버렸다영어라도 잘 허든가우나스왕의 무덤.이곳에 우나스왕의 피라미드나 세라페움같은 유명한 지하유적도 있는데지금은 출입불가. 세라페움은 꼭 한번 보고싶었는데죠세르왕의 피라미드. 남아있는 최초의 피라미드이다BC2600 언제쯤 지었다는데 피라미드를 처음 지을때는 기술이 딸려서 저렇게 계단식으로 지었댄다참고로 설계자는 무려 임호텝!임호텝이나 아낙수나문 네페르티티 미이라에 나왓던 인물들은 다 실존인물에서 따온 이름이다..사카라를 뒤로하고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맴피스가 나온다멤피스는 기록상 이집트가 건국된 BC3000년때 수도가 되었다나중에 신왕조시대(1500년 어느쯤..;)에 룩소르가 수도가 되기전까지 부흥했었다고 한다지금은 농사나 짓는 정말 시골마을이 되었지만세월이란~멤피스에 있는 유적은 볼게 거의 없고 그나마 하나 볼만한게 람세스2세의 거상이다이것도 영국한테 공짜로 주려다가 영국쪽에서 너무 크다고 거절해서 남아있는거..람세스2세의 카르투슈 (그림문자로 써놓은 이름)석상 하나 보려고 들어오는것 치고는 입장료가 좀.. 비싼거같은데..거기서 또 남쪽으로 내려가면 다슈르라는 곳에 도착한다사카라까지만 가도 벌써 관광객이 별로 없는데 다슈르는 정말 없다따로 다슈르 피라미드 지구까지 가는 교통편이 없기때문이다갔을때 관광객 딱 2명있었는데 곧 떠나서 피라미드안에서 혼자 뒹굴거릴수 있었다ㅋ붉은 피라미드대피라미드보다 먼저 지어졌는데 우리가 아는 뾰족한 삼각두 모양의 피라미드는 이게 최초란다붉은 피라미드 내부안에 들어가면 가파른 계단을 한참 내려가야 하는데무-척 덥고 암모니아 냄새같은게 나서 정신이 없다그래도 어릴 적 꿈이였던 피라미드 탐험..이라는 기분으로 돌아보니까 금방 즐거워졌다어릴때는 다들 한번씩 꿈꾸니까 이런거.안에 들어가면 회랑이 길게 되있거나 하진 않고 방2개에 계단으로 올라가면 또 방이 하나.대피라미드는 좀더 넓다는데 그래도 올수있다면 이쪽이 더 여유로울것같다물론 나올때도 기어올라와야 하는데 꽤힘들다저멀리 보이는 굽은 피라미드표면에 코팅했던 석회석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 피라미드이다.붉은피라미드를 만들기 전에 만들었다는데, 만들다가 무너질거같아서중간에 각도를 낮춰 지었을것으로 추정되고 잇댄다만든사람은 스네푸르왕.메이둠까지 가보고싶었지만 택시기사가 안간대서 그냥 돌아왔다이 택시기사.. 가다가 갑자기 서서는 담배를 사오질 않나피라미드에 내려놓고는 어디 가서 한-참 있다와서 사람 간떨어지게 하질 않나이래저래 피곤했다.. 근데 나중에 보니 이집트에서는 이게 기본이였다ㅋ한 2주일쯤 전에 갓다와서 한번 써봤는데ㅋ 정전도 깰겸반응봐서 다음내용도 좀 더 쓰겟음ㅇㅇ 반응없으면 안해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 시리아 터키 갓다왓고ㅇㅇ; 뭐 궁금한거 있으면 댓글달아봐라여행 시작하면서 처음 디에쌀 써서 사진이 영- 시원치가 않구나 지금도 못찍지만

아랍어 질문좀

아랍어에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도씀?
 그리고 식당이 마뜨아문 말고 다른 단어는 어떤게 있음?

형제의 나라 터키(Turkey)에 가다~!

형제의 나라 터키에 가다~!



























터키의 영웅 아타튀르크 기념관에 가다. 터키에서 케말 아타튀르크는 한국의 이순신, 세종대왕에 버금가는 위인이다.



















































































골목길에서 소녀와 마주쳤다. ^^ㅋ



























오른쪽 소녀가 자신은 섹시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아니거든.. ㅎ



























이곳에도 달동네는 존재한다. 빈부격차가 있는 것은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삶의 한순간..



























여름이 되면 이렇게 온통 소금밭으로 변하는 마술같은 호수다. 터키 사람들은 소금호수를 금호수라고도 부르는데 소금이 그만큼

귀하고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소금의 역할을 생각하면 아나폴리아 반도를 탐낸 역사적 사건들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곳의 소금은 터키 공급량의 60%를 차지하면 일년에 백만톤 가량을 생산한다고 하니 그 양이 정말 어마어마 하다.



























데린쿠유 지하도시 [Derinkuyu Underground City]

깊이 85m까지 내려가는 지하 8층 규모의 거대한 지하도시이다.



























기념촬영을 하는 커플이 보인다.



























카파도키아 [Cappadocia]



이곳에는 아직도 수천 개의 기암에 굴을 뚫어 만든 카파도키아 동굴수도원이 남아 있다. 약 3백만년 전 화산폭발과 대규모

지진활동으로 잿빛 응회암이 뒤덮고 있으며, 그 후 오랜 풍화작용을 거쳐 특이한 암석군을 이루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사랑하는 연인은 다정한 몸짓으로 표현된다.



























기념품 가게..



























개구쟁이 스머프들의 고향 카파도키아



























유럽에서 가까운 지역이라서 금발 미인들이 많이 보였다. 일반여성인데 모델처럼 예뻤다.



























자기야.. 조심 조심~!



























다이어트엔 운동이 최고이다.



























Pamukkale



























히에라볼리(Hierapolis)는 오늘날 파묵깔레로 빌라델비아 북쪽 약 160km 떨어진 곳에 소재한다. 히에라볼리는 뜨거운 물이 끊임없이
솟아나오는 온천지대.. 그런데 이곳 온천수에는 많은 양의 석회질이 오랜시간 물 속에 침전돼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하얀색 희귀한
비경을 이루고 있다.

높이가 100m 정도에 이르는 백색 석회질로 만들어진 이 자연의 장관은 멀리서 보면 마치 만발한 목화 송이로 뒤덮인 것 같아 보인다는
의미에서 목화성(Cotton Castle)이라는 뜻의 파묵깔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다..























































이 온천수는 섭씨 35도로 류머티즘, 피부병, 심장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치료와 휴식을 위해 그리스, 로마, 메소포타미아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로마 시대에는 여러 황제와 고관들이 이곳을 찾았는데 하얀 결정체가 대지의 경사면을 온통 뒤덮은 장관을 감상하면서

심신의 치료를 겸할 수 있는 최고의 휴양지였기 때문이다.



























백인들은 노출에 익숙해 있다. 관광지에서 거리낌없이 벗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아시아[Asia]와는 다른 문화적인 차이를 보인다.



























지진으로 사라진 잃어버린 도시 에페소[Ephesos]



























세리시우스 도서관셀수스 도서관(Celsus Library)

에페소 유적들 가운데 드물게도 2층의 전면 구조가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다.



























고대 원형 극장-대극장 (Ephesos Theatre)

헬레니즘 시대에 건축되고, 2만4천명이 수용되었다는 원형극장. 인구 10명당 1명을 기준으로 건축되었다고 하니.
이 건축물이 지어질때 이미 24만명이 넘는 도시 였다는 증거다.



























트로이 유적지는 터키 3대 썰렁 관광지중의 하나라고 한다. 다른 곳에 비해서 볼거리가 풍부하질 않아서

역사적인 의미를 두지 않고 찾는다면 실망할수도 있는 곳이다.



























터키여행 일정 대부분 현지식을 먹게 된다. 한국식당이 드물고 있더라도 비싸기 때문이다.



























이동중에 푸른 에게해[Aegean Sea]가 인상적이었고 해바라기밭도 끝없이 펼쳐졌다.



























이른 새벽에 열기구를 탔다.



























높이 높이 날아라~~~ !



























열기구는 제법 높게 날지만 예상했던 것보단 무섭진 않았다. 높은 상공에서 내려다본 카파도키아의 풍경이 장관을 이룬다.























































사진촬영에 열중하다.























































이런 기암괴석은 터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닐런지...



























열기구 관광을 마치면 기념 증서를 수여한다. 약 1시간의 비행에 소요되는 비용은 1인당 160유로 정도이다.

한국돈으로 환산한다면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아름다운 경치를 본 것으로 만족을 했다.



























피에르롯티 언덕에 자리잡은 공동묘지인데.. 터키도 한국과 같은 매장을 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묘지가 봉분형태가 아니고

작은 비석을 세우고 평평한 묘지에 장미꽃 등을 심는다. 공동묘지가 혐오시설이 아닌 공원처럼 느껴졌다.























































톱카프 궁전에 들어서다.



























톱카프 궁전 [Topkapl sarayi]



톱카프 궁전은 15세기 중순부터 19세기 중순까지 약 400년 동안 오스만 제국의 군주가 거주한 궁전이다. 이스탄불 구시가지가

있는 반도, 보스포루스 해협과 마르마라 해, 금각만이 합류하는 지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대체적으로 사진촬영에 호의적으로 응해주었다. ^^























































보스포러스해협이 보인다.



























궁전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악대를 만났다.



























시내를 달리는 2층버스..



























유람선을 타고 보스포러스 해협을 달렸다. 터키 어딜가다라도 터기국기[國旗]를 흔히 볼 수 있는데..

푸른하늘 아래 펄럭이는 깃발은 정열적인 터키 사람들의 역동성을 보는 듯 했다.



























마치 영화에서 봤던 타이타닉호를 보는 듯하다.



























사람들의 시선[視線]



























바다가 고요하진 않고 역동적임을 느낀다. 좁은 해역이지만 파도가 상당했고 유람선이 파도에 출렁거렸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바다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좁은 해역으로 수 많은 화물선과 유람선이 다니므로 언제나 사고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셈이다.



최대한 현지에서 느꼈던 감동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짧은 시간에 디테일을 살리기엔 한계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태리 베니스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이곳 보스포러스해협이라고 느꼈다. 실제로 본다면 바닷물이 맑고 푸르다. 양옆으로 고급주택과 유적들이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고 시원한 바람은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누군가 이스탄불을 찾는다면 꼭 유람선은 타보라고 권하고 싶다.























































보스포러스(Bosporus) 대교를 지나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터키 이스탄불에서만 볼 수 있다는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다리

-Bosporus 현수교의 길이는 1,560미터이고 넓이는 33미터, 높이 165미터이다.























































연인이 있는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인류가 존재하는한 남녀의 사랑은 영원한 테마가 아닐까... ^^



























kiz kulesi

'크즈 쿨레시'(kiz kulesi)란 터키말의 뜻은‘딸 또는 여인의 탑’이 되는데 여기서 '크즈'는 터키 사람들이 어리거나 젊은 여성을 자기의 딸같이

정겹게 부르는 호칭이고 쿨레는 탑인 것이다. 이렇듯 이름에서 부터도 이 탑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풍겨 나듯 이스탄불 사람들은 이 자그마한 섬을

최고의 낭만적인 심볼 중의 하나로 여기고 있다.



























여자가 사랑에 빠졌는지 애정표현이 대담하다.



























PM 15:56



























터키 전통시장 그랜드 바자르[Grand Bazaar]에 들어서다.



터키어로 '덮여있는 시장'이라는 의미의 카파르 차르쉬(Kapar Carsi)시장은 아치형 돔 지붕으로 덮인 대형 실내 시장으로, 일반적으로 그랜드

바자르로 알려져 있다. 1455~1461년 술탄 메메드 2세(Mehmed II)의 명에 의해서 건축되었으며 16세기 술탄 술레이만 1세(Suleiman I) 통치

시기의 대대적인 확장을 비롯하여 여러 번의 증·개축을 통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골동품 파는 가게로 보였다.



























광장을 걷다.



























밤에 보는 성 소피아성당이 운치가 있다.



























술탄아흐메드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터키를 대표하는 사원이며, 사원의 내부가 파란색과 녹색의 타일로 장식되어 있기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제14대 술탄 아흐메드 1세가 1609년에 짓기 시작하여 1616년에 완공했다. 우뚝 서 있는 첨탑 6개는 술탄의 권력을 상징하며, 이슬람교도가

지키는 1일 5회의 기도를 뜻하기도 한다. 사원 앞의 정원에는 언제나 화사한 꽃이 피어 있어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Sultan Ahmed Mosque



























무더운 날씨속에 부채를 부치는 미녀들.. ^^ㅋ 이목구비가 참으로 시원하게 생겼다.



























블루모스크 맞은 편에 소피아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데이트중인 연인..



























성 소피아성당























































오래된 성당이지만 웅장하고 화려했다.























































2층으로 오르는 통로..























































성 소피아성당



비잔틴 문화의 최고 건축물인 대성당으로 건축되었으나 모스크였다가 현재는 아야 소피아(Aya Sophia)라고 불리는 박물관이다. 이스탄불에 위치한

성 소피아 대성당은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서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불렀던 6세기에 그리스도교의 대성당으로 건축되었다. 당시의 황제였던 유스티니아

누스는 완공된 성당 건물에 감격하여“오! 솔로몬 왕이시여! 내가 당신을 이겼노라!”라고 부르짖으며 솔로몬 왕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 보다 더

거대한 성전에 찬탄을 했다고 전해진다.























































히잡을 쓴 여인.. 히잡은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멍에였을까..?

아니면 낯선 사내로부터 여인을 보호하는 방패였을까..

무더운 날씨에 덥게만 느껴진다. -.-;



























쇼핑은 언제나 즐겁다. - 카타르 도하



























골목길을 걷다.



























인천공항 가는 경유지인 카타르에서 야간시장을 구경했다. 여행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깨닿게 한다. ^^
















     








                                                     출처 웅스넷 : http://woongs.net


   

인도 에서 요가 배울려는데..

인도에 1개월 정도 머물고, 요가학교 결정후 1년 배울려 하는데... 학교 추천 ..부탁 함다.. 

인도에서의 힌디어

저는 작년 7월부터 인도 델리의 ‘켄드리야 힌디 싼스탄’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힌디를 전공했던 학생신분으로, 그리고 이곳에서 힌디를 공부하는 학생의 신분인 저는, 이 글이 제 자신을 깎아내리는 글이라는 것을 잘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인도에 대한 환상, 힌디어에 대한 환상 및 잘못된 편견을 갖고계신분들을 위해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고3때 수능을 보고 인도로 도망왔습니다. 한달여간의 배낭여행을 통해 인도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선택의 여지도 없이 인도어과에 지원했습니다. 인도어과에서 1학기간 공부하다가 다시 인도로 와 3개월간 힌디 과외를 받으며 델리에서 살다가, 3개월간의 배낭여행을 통해 인도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그리고 군에 입대했고, 제대하자마자 다시 인도로 와서 이렇게 힌디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힌디는 굉장히 재밌습니다.        
여행을 하다가, 힌디를 한두마디 할줄아면 인도인들이 굉장히 좋아합니다. 쉽게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서민들과도 쉽게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물론 사기도 덜 당합니다. 여행하는 외국인들이나 한국인들도, 인도어를 하는 저를 보면 부러워합니다. 으쓱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한 학기가 흘렀고, 제 힌디도 커뮤니케이션수준 이상으로 많이 늘었습니다. 인도 어디를 가나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고, 가이드와 인솔을 할 정도로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고급레스토랑이나 5성급 호텔을 갈 경우, 특기인 힌디를 쓰지 않고, 영어를 씁니다. 고급인력들을 대할 때, 힌디를 쓰면 그들에게 무시를 당합니다. 인도에서 영어는 권력과 부의 상징이며, 생활의 필수이자 생존수단입니다. 카스트제도가 존재한다구요? 저는 그 구분은 영어수준에 따라 나누어진다고 봅니다. 소위 말하는 상위카스트들의 영어실력은 원어민수준 이상입니다. 아래카스트로 내려올수록 그들의 영어는 커뮤니케이션수준에 불과해집니다. 최고급인력들은 힌디를 잘 하지 못합니다. 힌디는 커뮤니케이션 수준이면 생활로 충분하기에, 그들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려하지, 힌디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군 제대후, 인도에 계신 분들과 사업하시는 분들께 많은 조언을 받았습니다. 이운용교수님께서도 늘 말씀하셨습니다. 인도에서 힌디는 중요하지 않다고.        
        
저는 사실, 그부분에 어느정도 동의했으면서도 힌디를 배우려는 고집을 꺾지않고 이렇게 인도에 왔습니다. 힌디의 중요성을 믿고싶었고, 힌디가 유엔공용어가 되는 것을 기대했습니다. 힌디사용인구의 퍼센테이지에 무게를 실었고, 힌디의 유용성을 광고했습니다         
        
그러나 힌디는.        
정말로 커뮤니케이션 수준이면 충분합니다.        
유상선사장님께서 말씀하셨듯, 릭샤잡을때만 힌디를 쓰면 됩니다.        
        
저는 IHM이라는 인도의 호텔경영대학에 입학을 준비중입니다.        
그곳의 수업은 물론 영어로 이루어집니다. 인도의 모든 대학교육은 영어로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영어를 하지못하는 학생들은 대학교에 입학조차 불과합니다.(JEE 테스트를 보지 않는, 엉터리 대학교라면 입학이 가능할겁니다)        
        
언어는 그 사회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인도의 문화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과 달리 너무도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각 주마다 문법이 다르고, 발음도 다르고, 심지어 글자조차 다릅니다. 힌디어 하나로, 인도 전체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싼스탄의 교육시스템에 대해서도 얘기하고자 합니다.        
싼스탄에서 공부하고 있는 외국인학생들의 90%가 학교생활에 염증을 느낍니다. 이 학교의 교육시스템 자체도 문제지만, 배울수록 어려운 언어이기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수업은 일부 장학생(아프가니스탄 계열 및 힌디어 전공을 하다온 친구들)들에 집중되고, 나머지 소외된 학생들은 발표할 기회조차 없습니다. 학생들은 경고장이 무서워, 비자가 취소되는 게 무서워, 출석체크의 이유로 학교에 옵니다. 그리고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다가 집으로, 영어과외선생님에게로, 영어교육기관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인도에서 영어의 중요성과, 힌디의 비실용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이 너무 한쪽으로 기울었네요.        
힌디의 장점들에 대해서도 언급해야 겠네요.        
힌디를 전혀 하실줄 모르신다면, 인도에서 생활하시는 데 많은 어려움들이 따릅니다. 릭샤왈라, 청소부, 경비원들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기 때문이죠. 힌디를 하신다면,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편하실겁니다.        
그리고 여행하시는 데 있어 힌디를 하실줄 알면 더 많은 경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친구를 사귈때, 첫 한두마디를 힌디로 하게되면 쉽게 친해지실 수 있습니다.        
또한 가이드나 인솔, 통,번역을 위해서도 힌디가 필수입니다.        
언어를 전공하시려는 분들께도 힌디는 당연히 필수지요.        
        
그밖에는 없습니다.        
        
힌디를 아무리 잘하셔도, 중요회의나 비즈니스시 힌디를 사용하시면 불이익이 따릅니다. 무론 중요회의나 비즈니스시에는 영어를 사용하겠지만요.        
        
힌디를 공부하시려는 분들게 마지막으로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시면서 힌디를 하시게되면 플러스가 되지만,        
영어도 못하시면서 힌디를 하시게되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됩니다.        
        
인도어를 전공하시는 분들, 교수님들께 정말로 죄송하지만, 이것이 21세기 인도의 현실입니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제 의견에 반발하시는 경우도 많겠지만, 동의하시는 분들도 많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1] 2 3 4 5 6 7 | next page >>


ⓒ2008 묻지마 디시인사이드 블로그
If there is a problem, please send me an email hehehe7@gmail.com